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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의심한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 40대의 문턱에 선 당신과 나의 이야기 ‘나는 그런 어른들이 더 무서웠다. 나를 의심하지 않는 어른,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는 어른들보다도, 내가 지금 거짓이나 틀린 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자신에 대한 의심이 조금도 없는 어른들이 백배는 더 무서웠다. ’(12-13쪽) 곧 마흔이 되는 저자의 독백이 마치 나의 것처럼 느껴진다. 30대 중반의 내가 한 번쯤 가졌을 법한, 그러나 일상을 살아내느라 잊어버린 생각들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겼다. 나보다 어른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당신들과 다르게 살 거야.'했던 호기로움은 '삶이란 다 그런 거구나.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군.'하는 수긍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나처럼 살아라 하기에는 떳떳하지 못한, 어중간한 나의 모습. 『나를, 의심한다』를 읽으며 그런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었다. 30대 중반을 넘어 40대로 향하는 사람이 갖는 고민과 삶에 대한 사유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것이기도 했다. 강세형은 라디오 작가로 일하다 2010년『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출간한 이후 본격적으로 글을 써 오고 있다. 2013년에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를 출간했고, 이번『나를, 의심한다』가 세 번째 책이다. 자신의 일상,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주는 에세이집인데, 짧은 에세이 24편이 담겼다. 굳이 책의 주제를 뽑아보자면 '어른이 된다는 것',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일상의 평화로움이나 자연의 아름다움, 사람들의 행복한 일상을 담는 서정적인 글을 기대하면 안 된다. 문체는 다소 건조하며,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회색 구름이 꽉 낀 날처럼 어둡고 우울하다. 20대에 꿨던 꿈을 기억하고 있고, 그때의 감수성을 여전히 간직한 채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30대의 마음 풍경이 그러하기 때문이 아닐는지. 작가는 J의 ‘저절로 그려지는 그림’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수많은 어른들은 또 지난밤 무슨 꿈을 꿨을까, 이 수많은 어른들은 또 지난밤 어떤 아이였을까. 이 수많은 어른들은 또 어떤 아이로 태어났던 걸까,’(152쪽)하고 묻는다. 당신도 ‘아름다운 글을 쓰기 위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학업, 취업, 결혼, 육아 등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급급해서 잊어버렸던 나의 꿈이, 열정이 그리워진다. 저자는 오래전부터 지켜봐온 영화감독의 최근 작품이 ‘너무 어른의 영화 같아서’ 슬펐다 한다. 감독의 젊은 날에는 볼 수 없었던 배려와 머뭇거림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줄 위에 올라야 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균형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무리 우리의 마음은 아직 어린 날의 어디쯤에 머물러 있다 해도, 우리의 시간은 이미 어른의 영화 속으로 넘어와 있었으니까’(135쪽)라는 저자의 독백을 듣고 있노라면 어른 되는 일의 쓸쓸함이 크게 와 닿는다. ‘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하나를 얻으면, 그 하나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둘을 생각하고, 그 둘을 위해서 쉼 없이 달리고, 그다음엔 또 셋, 넷, 다섯, ….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193쪽)라는 물음은 고스란히 독자에게로 날아든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제대로 느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느냐고 아프게 묻는다. 40대 진입을 코앞에 둔 30대의 작가 강세형. 그녀는 정말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가 보다. 혹시나 주어지는 그대로 만족하며 살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생각이 당연히 옳다고 믿어버리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독자는 남의 이야기인 듯 흘려듣다가도 문득 ‘그렇다면 나는?’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저자와 같은 30대 후반 40 초반 연령의 독자라면 특히나 크게 공감할 것이다. 강세형은 젊은 날의 열정에서 빚어지는 열정과 호기심, 사랑을 잃어버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담담하게 들려 준다. 그리고는 그냥저냥 살다가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건 별로라는 말을 툭 던진다. 꿈 많고 열정이 넘치던 젊은 날의 우리가 어떻게 변했는지 증언한다. 친한 친구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너도 그렇구나. 나도 그래.' 라고 공감하면서 잔잔한 위로를 얻는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없는 핑계, 내가 저것을 할 수 없는 핑계. 모든 핑계를 거두고 나면, 그리고 운이 좋다면, 나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짜 나, 진짜 나의 욕망을.’(291쪽) 라는 말은 ‘나도 진짜 욕망을 찾아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게 한다.
힘겨운 30대를 넘어 40대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차분히 살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좀 다르게 살아보는게 어때?'하고 어깨를 툭툭 쳐주는 특별한 친구 강세형을 만날 수 있다. 모든 게 익숙해지는, 당연해지는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당돌하게 외치는 이 30대 (이제 곧 40대)의 돈키호테가 밉지 않다. 누구나 평온한 일상을 벗어나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고픈 돈키호테를 품고 살고 있을테니 말이다. 40대, 50대, 60대가 된 강세형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그녀는 또 어떻게 살아내고,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또 어떻게 살아내고, 살아가고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