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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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지는 늦가을에 낙엽보다 무겁고, 추위보다 매서운 통보가, 찾아오는 계절이 있다. 바로 전기,가스 요금 명세서와 월세금 납부일. 신용카드 지금이 날아드는 월말이다. 가난한 자취생에게, 겨울은 가을이 끝나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통장에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찾아온다. 통장에 치미는 마이너스의 계절. 영하보다 무섭고 동장군보다 강하다. 옷을 단단히 매여입어도, 낡은 내복을 꺼내 입어도 가시지 않는 가난의 추위 앞에서, 우리가 달아날 수 있는 방법은,  멀리 있는 봄날을 기다리거나,  지금이 아닌 다른 날들. 더 따스하고 가슴 벅찰 겨울을 꿈꿔보는 일이다. 아직 내가 이 가난한 자취생의 젊음을 사랑하는 까닭은, 내가 꿈꾸는 날들이, 오늘이 될 수 없는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내일이 될 수 있는 미래의 앞날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런 앞날을 그릴 수 있다면, 그런 앞날의 그림자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 그림은 햇살이 스며드는 크레타 섬의 해변일 것, 그 그림자의 주인공은 그 곳에서 기둥처럼 서서 바다를 응시하는, 조르바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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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의 창문 사이로 가만히 찬 바람이 스며드는 때, 바람에 베일까봐 창문을 꽉 닫다가도 어느 순간 , 그림처럼 서서 바다를 응시하는 조르바, 외투를 벗어 던지고, 겨울바다를 헤엄치는 그를 떠올린다. 그러면 갑자기, 매서운 겨울바람에 뛰어들어. 무참히 베이는 한이 있더라도, 창문 밖 세상으로 헤엄쳐 나가고 싶어진다. 조르바를 닮아간다는 것은, 두려움도 없이, 외로움도 없이, 무한한 자유만이 바다처럼 펼쳐진 여행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런 희망으로 벅차오르는 순간이. 이 소설 안에, 조르바의 가슴 안에, 있다.  



“젊은 선생, 당신은 이유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이오? 무슨 일이건 그냥 하고 싶 

 어서 하면 안 되는 거요? 대체 무슨 생각이 그리 많소? 하고 싶은 일이 있거든 눈 질끈 감 

 고 해버리는 거요. 당신이 갖고 있는 책은 몽땅 쌓아놓고 불이나 질러버리쇼. 그러면 누 

 가 알겠소? 당신이 바보를 면하게 될지. ” 
 


그러나 크레타 섬 해변에 서있는 조르바의 영상이 내 눈가를 모두 스치고 나면, 다시 하얀 종이 위에 잉크빛 활자들이 되살아나고, 일상에 치여 좌초된 내 지난 꿈들의 기록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매서운 실패에 치이고, 무거운 현실에 얽매여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젊음의 한가운데로, 무거운 발걸음을 옪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움츠려든 겨울이 내 방 안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고 날 어르고 달랠 때마다, 조르바를 향한 나의 꿈은, 영원히 가지 못할 여행을 계획하는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고, 먼 북녘의 고향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노인처럼 그 꿈으로부터 뒤돌아서게 만든다. 더 많이 소유할 것을. 더 넓게 누려볼 것을. 더 높은 곳에 올라볼 것을 주문하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가슴에만 반응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보다 어려울 일이다. 타인이 던져준 이유와 현실이 가져다준 변명이 아닌, 뛰고 있는 붉은 가슴소리에만 귀 기울이며 산다는 것은, 매일밤 전기세와 가스비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끓인 물로 머리를 감는 청년에게는 요원한 일인 것이다.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 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중략)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그러나 조르바는, 자신의 꿈을 향한 길 위에서조차, 앞으로 나아가는 엑셀이 아니라, 주춤하며 멈춰서는 브레이크만을 걸고 있는 나에게 계속된 제안을 건넸다. 질서도, 법칙도 없는 춤사위로, 나이와 신분을 넘은 사랑으로. 도덕과 종교를 가르는 신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조르바의 삶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젊은이는 없을 것이다. 예순을 넘은 노인에게서 청춘의 방법을 배운다는 것. 주저하고 망설이는 젊은이에게, 브레이크를 버린 조르바가 어서 “가자”라고 말할 때, 나는 가슴으로부터 치밀어 오르는 삶의 열정,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도전이라는 낱말이 가진, 원래의 열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나를 지배하는 현실의 규율에 맞선다는 것은, 현실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몸이 부서지도록 부딪치는 것임을. 온 몸이 땀에 젖도록 현실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것임을. 조르바는 자신의 삶으로써 증명해 보인다.  

그래요. 당신은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그런 증명 앞 에서  나는 자유라는 낱말의 의미를 머리로만 생각해왔음을 깨닫는다. 자유는 책에 쓰여 있지 않다. 자유는 시험지의 정답이 아니다. 자유는 합격과 불합격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조르바의 자유는, 훌쩍 모든 답을 버리고 새로운 답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것을 바라기보다, 내 자신이 그 “모든 것”으로 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찾아올 때, 따뜻한 방안의 이불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뜨거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써, 자유의 의미를 정의해나가는 것이. 진짜 자유임을 조르바를 통해 깨달았다. 언제나 시간으로만 청춘을 살던 나. 세월이 준 청춘을 “얻어” 쓰던 내가, 내 자신으로 청춘을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나는 더 이상 어두운 겨울날, 차가운 자취방이 아닌, 크레타 섬 해변 위에 조르바 와 함께 서 있었고 , 나는 그 어떤 순간보다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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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는 다시 추운 겨울날의 자취방으로 돌아온다. 방안의 먼지들은 여전히 책장 사이의 책 사이로 스며들고, 전기세와 가스비 통지서는 책상 위를 나뒹구며,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현실이 가진 막막함은 여전히 자신의 무게를 늘려가며 나를 구속할 준비를 한다. 수색영장도 없이 찾아오는 겨울의 추위 앞에서, 오랫동안 나는 내 뜨거운 가슴을 증명할 증거물 하나 없는 피고인, 매일 내 청춘의 명예를 훼손했던 용의자 였다. 그러나 지금,나는 조르바를 통해, 스스로를 재판하는 심판관, 나 스스로를 벌하는 검사, 나 자신을 옹호하는 변호인이 되고자 한다. 나의 자유는 내가 아닌 누군가로  판단되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나의 모든 것이므로. 오직 나를 심판할 수 있는 죄명은 “자유” 내가 치를 죄값도 "자유"  내가 수감될 감옥도. “자유”가 된 다. 내 자유는 나로 인해 만들어지고, 나로 인해 사라지고, 나로 인해 다시 살아난다. 이 모든 자유를 조르바를 통해 얻었다. 조르바는 내 자유의 다른 이름이자, 내 청춘의 새로운 자세다.

 

    

"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 p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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