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과거 - media, memory, history - 과거는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기억되고 역사화되는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지음, 김경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과거와 현재와의 관계를 이렇게 이야기한다.“지나간 일들은, 네 마음에 인상을 남긴다. 그 일들은 과거로 지나갔어도 그것들이 남긴 인상은 현재에 남아있다. 나는 바로 현재에 남아있는 그 인상을 재는 것이지 과거로 지나가면서 인상을 남긴 그 일들을 재는 것은 아니다. 내가 시간을 잰다고 할 때 나는 바로 그 남아있는 현재의 인상을 재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견해에는 결국 우리들의 시간적 지평이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이라는 관점이 담겨있다. 즉 과거라고 하는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혹은 존재했던 사건 자체가, 아니라, 우리들이 기억하는 방식에 맞춰져서 남겨진 인상과 같은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즉, 과거는 그것이 현재에 분명한 인상으로 남을 때 의미가 있다. 

  여기서 그 “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일정한 “지식”이나 “기억”만을 의미하지 않는듯하다. 즉, 인상은 우리들이 기억하는 방식의 표면상에서 사고의 망에 걸러서 남은 기억들인 동시에 그것을 경험한 순간 느낀 감각적인 것들과 함께 남는다. 즉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예전의 일들은 감각적인 체험으로 인해 구체화될 때 더욱 더  선명한 자국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기억들이 과거고 그 과거의 집합이 역사라고 할 때, 역사는 우리들에게 선명히 “인상”으로 남아 구성된 지난 “현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에 대한 독특한 관점은 “우리안의과거”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찰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제 1 장 “과거는 죽지 않았다”에서 “동일화로서의 역사”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그 동일화로서의 역사는 “상상력과 공감”에 의해서 재구성되어지고 우리들은 미디어를 통해 과거의 현실과 사람들과 교류하며 공감과 상상력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의 감각과 시각적 체험을 통해 역사가 재구성되어지고, 그 동감과 상상력이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그것을 또 하나의 분명한 인상, 과거로써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적 관점과 분명히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저자의 견해를 종합해보자면 결국 “선명한 인상의 자국을 남기는 기억들이, 동일화로서의 역사이며, 그 인상은 상상력과 공감, 감각적인 체험을 통해서 가장 강하게 남는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 작가는, 미디어 속의 수많은 매체들 속에서 구성되어지고 제시되는 역사의 단편들이, 그 무엇보다 우리에게 선명한 인상과 기억을 남기기 때문에, 미디어 매체들 속에서 구성되어지고 있는 과거, 그 미디어들의 특성을 분석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즉 미디어가 남긴 특정 과거에 대한 인상이, 우리들의 그 과거에 대한 인상이 된다고 할 때, 그것은 과연 참인 과거 인가? 그리고 그것들을 “역사”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점에서 저자의 매체비평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매체 속에 담긴 과거를 탐구하고 있는 과정에서,  미디어로써 구성된 역사 ,그것을 역사의 진실로 기억하고 수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즉 기존의 역사학자들이 오직 학문적 영역에서 논의한 -해석으로서의 역사- 역사라는 엄정한 개념만을 강조하여 , 대중매체 속 역사를 평가절하 하기보다는, 그렇게 구성된 역사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라는 되물음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의문을 쫓는 과정에서, 매체들이 담고 있는 역사는 근본적으로 매체의 한계에 의해 왜곡되거나, 조각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즉, 특정한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역사를 서술하고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의 한계를 만든다고 보는 것이다. 어떤 과거의 사실을 다룰 것인지,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 이 모든 선택과 배제의 결정은 매체,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의해 좌지우지됨을 수많은 사례 분석을 통해 저자는 이끌어낸다. 예를 들어, 영화라는 매체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표현의 내적 한계와 영화산업이 가진 문화 경제적 측면을 반영해야 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영화는 특정한 과거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형시킬 수 밖 에 없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결국 미디어 속의 과거는 일정부분 조각되어지고 틀지어진 과거가 되며, 그것이 실제로 그러했다! 라고 결론 내려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 그로 인해 영화를 통해 우리가 특정한 역사적 사실을 구성하고 이해했을 때, 그것은 영화의 현실과 일체성으로 그 이야기들은 선명히 기억에 남게 되지만, 그 과거는 역사의 전체적 맥락과 온전한 내용을 갖추지 않은 구성된 역사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과거가 그 매체의 특성과 기준에 의해 조각되어진 과거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미디어, 매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인상도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의해 이해되고, 이것을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그 사람의 방식에 따라 전해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선명한 인상으로써 남는 것은 우리들의 지난 경험과 취향, 지식과 문화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며,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경험한 현재들을 편집해서 기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회고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어린 시절이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에 가 아니라, 우리들이 인상으로 남기고자 하는 것들이 “아름다움”뿐이기때문일지도 모른다.

  결국 매체의 특성과 한계에 의해 구성되어진 역사가, 그것이 엄정한 의미에서 역사가 되지 못하여, 특성에 의해 구성된 과거라 할 때 그것은 매우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매체, 미디어 자체도 사람에 의해 구성되고, 사람의 기억을 바탕으로 써지기 때문이다. 매체가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고 조각되어지는 것처럼 사람도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할 때 자신만의 느낌과 감상에 맞게 편집하고 표현하여 전달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미디어의 특성으로 인한 한계로 인해 과거와 역사가 오해되고 잘못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서술의 한계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당연함을 인정하면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역사에 대한 또 다른 태도를 요구한다. 즉, 역사라고 하는 것이 주관적으로 구성되고 만들어졌으며, 그러므로 그 어떠한 역사나 과거도 “진짜”가 될 수 없다는 냉소주의적인 현대의 시점에 있어서 “역사에 대한 진지함”의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 진지함이란,  결국 우리가 매체를 통해 기억하고 받아들이는 과거는 매체에 의해 수정되고 쪼개어진 과거이며, 동시에 그것자체로 “동일화된 역사”를 하나의 역사적 측면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그 인정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매체속의 과거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그 과거와 역사라고 하는 것들은 교과서나 강의실 안에서만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미디어들 속에 살아 숨 쉬고 있고, 동시에 그렇게 전달되는 과거와 역사의 호소력이 ‘우리안의 과거’를 구성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럴수록 더욱 더 우리 주변의 과거, 우리 안의 과거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과거, 역사를 수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만의 인상과 해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미디어 속에서 역사를 구성하는 사람과 그 과거 속에 살고 있는 인물과 열린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그 것을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아주 큰 현재의 변화도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 결국 우리 자신에 담기는 과거들은 우리들만의 감각과 기준으로써 기억되고 만들어지지만, 그 과거는 단순히 과거로써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로 환원되는 방식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즉 우리가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가에 따라, 지금 현재의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방식, 언젠가 과거 속으로 들어가 사진 같은 인상으로 남는 것들이 결국은 우리가 앞으로 맺게 될 관계의 방식과 앞으로 있을 현재를 기억하는 방식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저서는 대중매체가 은연중으로 우리에게 학습시키고 있는 과거를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은연중의 학습을 통한 또 다른 학습을 하게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즉, 독서와 성찰의 방식은 우리들이 손쉽게 대중매체의 이해와 전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끔 만듦으로써, 끊임없이 우리안의 과거를 부시고 다시 만들어나가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관이 맞다면 결국, 이러한 날카로운 이해의 칼날에 의해 재단되고 만들어진 과거야말로 올바른 “역사”, 올바른“과거”가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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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ushutong8141 2008-10-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