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의 갈등을 피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갈등이 발생하면, 그것을 잘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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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요즘 자주 부딪치는 느낌이다.

  섭섭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기어이 이야기하고 만다. 三思一言하지 못하고 일단 내뱉고 나서 깨닫는다. 이게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겠구나. 아니 기어이 자존심을 건드리고야 말았구나.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고서는 돌아서서 다시 그걸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 비로소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다. 이건 내 성격의 문제인 셈이다. 친하지 않거나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내게 '꼰대질'한다며 비아냥거렸을 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꼰대질인가. 문제를 건설적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라면 비판적 시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건 분명 귀찮고 때로 감정을 자극하는 문제일 수는 있어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서로 다른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차이를 조율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사람이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가까운 사람과 이렇게 부딪친다 싶으니 난감하다. 서로 이런 일 한 두번 있었다고 고개를 돌려버릴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섭섭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시 상대를 자극할 뿐이라면 이 악순환은 결국 관계를 악화시킬 뿐이다. 나는 달라져야 한다. 성격은 누적된 삶의 무게를 반영한다. 쉽게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그럼에도 달라져야 한다. 나부터 달라지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 지적을 할 수는 없다. 불필요한 지적도 문제거니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문제다.


  장점과 단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예리해야 할 때 날카롭되, 부드럽게 흘러가야 할 때는 유순해야 한다.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하여 모든 상황에 칼끝을 겨누는 행위를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포용력. 나와 다르다고 하여 틀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의 문제라면 섭섭함은 섭섭하다고 표현되어야지 날카로운 말을 휘둘러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나의 인격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책도 자위도 원치 않지만, 조심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말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생각할 틈을 가져라.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이 말할 가치가 있는지, 무익한 얘기인지, 누군가를 해칠 염려가 없는지 어떤지를 잘 생각해보라. -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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