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난 교수들을 찾아 강의를 들으면서 매주 혼난다. 이유인즉 학생들이 공부를 '잘못' 하고 있다는 것.

  하루는 선형대수학 교수님께 질문이 있어 찾아간 적이 있다. 교재에 있는 문제들을 다 푸는 것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많은 문제를 힘들어도 꼬박꼬박 풀어갔는데, 답은 홀수만 있었고 짝수는 없었다. 그나마 증명 문제들은 홀수 번에 있어도 답조차 제시해주지 않았다. 교수님을 찾아갔던 건 틀린 문제 중 이해가 안 되어서 찾아간 것도 있었지만, 답을 알기 위해 찾아간 것도 있었다. 뭘 모르는 지도 정확히 모르고 횡설수설하고 있는 날 바라보던 교수님께서 한 마디 하신다.

  "이 문제를 다 푼거에요?"

  "네"

  "이러면 실력이 늘지 않을텐데"

  무작정 문제를 많이 푸는 것보다 개념을 정확이 이해하고 적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나는 정의와 정리를 읽고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문제풀이를 통해 보완하고자 했다. 교수님께 그런 말씀을 드렸지만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중에 질문하려고 가져갔던 것들은 왜 교수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데도 이해를 못하겠던지. 모르겠는 건 뭘 모르겠는지조차 알쏭달쏭했는데 답변은 너무 당연해서 별다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냥 막연하게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적분 교수님은 3월 한 달 내내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의 공부방식을 강도높게 비판한다. 과제를 내줬더니 공부는 안하고 문제만 풀어왔다느니, 스스로 생각도 안 해보고 증명이나 풀이가 있는 다른 책을 찾아보려고 한다면서 이래가지고는 학기말에 재수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아 그럼 도대체 어떻게 공부하라는 거지'하는 막연한 반발심이 생겼다. 아는 사람 입장에서나 보이지, 고민한다고 뵈지도 않는 답이 보인단 말인가. 교수님 말에 따르자면, 증명 같은 것도 어디서 보고 외우는 방식은 이해하는 게 아니다. 그건 공부가 아니라 암기라고,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면 응용을 못하고 학문도 불가능하다고 하시는 데 이 말을 매 시간 듣고 있으니 나는 경제학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물리학과 학생들은 얼마나 갑갑할까.

 

  그런데 같은 얘기 같아도 한 달을 지적받고 나니까, 정말 수학 공부하는 방식을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함수 몇 개 미분할 줄 안다고 미분을 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것. 그래야 실력이 는다는 말은 문제를 푸는 능력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사실 실력이 늘어가는 과정이란 답 없이도 가능하고 답이 없어야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맨 처음부터 똑같은 이야길 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비슷한 생각이 반복되고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나서야 뭔가 '깨우친다'는 것에 대해 몸소 이해하게 된 듯한 기분이다. 그런데 막상 실천하려니 현실은 정리 하나 놓고서 하루종일 들여다보는 꼴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게 맞는 길일 것이라는 느낌은 든다. 경제학이나 철학 공부할때도 그러지 않았던가. 수학은 처음부터 배우는 셈이니 아직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느 경지가 하루하루의 고난 이후 불연속적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천천히, 또박또박 걷는 수밖에. 진짜 쥐뿔도 없을 때 믿음마저 없다면 무얼 근거로 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