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고, 결국 나이는 두 다스가 되었다. 올해에도 꿈많은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 꿈을 본다. 희미한 채로 남아있는 그 꿈을.


  대학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냉소적인 사람도 있었겠지만 낭만적인 신입생들이 많았다. 물론 그건 새내기로서의 판타지이고 고등학교 4학년의 패기와 치기와 기대감이 뒤섞인 가능성 가득한 원석이었다. 대학교 1학년, 2학년 내내 많은 동기들은 관용어구처럼 말하곤 했다. "그래도 우린 아직 가능성이 충분한 20대 초반이잖아." 그 말에 동의했지만 어딘가 더부룩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꿈은 하나의 낭만이다.

  꿈이라. 나는 꿈이 구체적이기보단 추상적인 용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야망도, 욕망도, 소망도 꿈이고 밥먹는 것, 대학 가는 것, 취업하는 것, 여행가는 것도 꿈이며 스파게티를 먹는 것, 고량주를 마시는 것, 소르본대학교에 가는 것, 삼성에 가는 것, LG에 가는 것, 프랑스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 역시 꿈이다. 그러니까 꿈을 꿈이라고만 말한다면 그것은 초심자의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꿈의 정체를 밝히고 구체화하면서 현실에 그 꿈이 등장해야 한다.

  이제 내 또래의 친구들은 하나둘씩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다. 뭐가 됐든, 사람들이 '타협'이라는 단어를 신입생 때 사용했던 '꿈'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자주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현실'때문에 '꿈'을 접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꿈에 관한 담론은 현실에 관한 담론으로 넘어간다. 원빈같은 남자도, 김태희 같은 여자도 없으며 몸 편하고 마음 편하면서 돈 많이 주는 직장도 없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은 적은 반면 호시탐탐 코베어가려는 사람은 많다. 그렇게 낭만주의자들은 냉소주의자가 되었다.


  나는 이상주의자야.


  이제 이 말은 내게 '나는 극단주의자야'라는 말로 들린다. 아주 어린 나이가 아니라면 더이상 공허한 낭만주의에 공감하기 어렵다. 꿈을 꿈으로만 남겨둔 사람은 현실의 벽에 부딪칠 필요가 있다. 낭만주의자는 현실적인 선택을 꿈에 대한 변절이라거나 현실에 대한 굴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을 긍정하는 건 패배가 아니다. 그들은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꿈을 낭만화하면서 눈앞의 현실을 가볍게 여기지만, 그건 그들의 무책임을 보여줄 뿐이다. 밥 먹고 똥 싸는 건 우리의 생존조건이다. 


  우리들의 꿈이 성찰과 노력을 수반했으면 좋겠다. 같은 꿈이 같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꿈은 사회적 기득권층으로의 진입을 가능케 하지만 누군가는 치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 각자 정직한 정체성을 가졌으면 한다. 꿈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며 파란약만 삼켜대는 사람들은 성숙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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