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서거 30주년 추도식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의원(이하 박근혜)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셨지만,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박근혜, 2010.10.29)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하 박정희)은 쿠데타 집권 직후인 1962년부터 '복지국가'혹은 '복지사회'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부조와 보험을 기간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확립하여 국민생활 향상과 복지사회건설을 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교육과 사회의 보장시책은 단기적인 평가는 불허하므로, 가능한 한 졸속주의와 급진적 개혁은 이를 신중히 처리할 것입니다."(박정희, "1962년도 시정방침," <최고회의보> 제 5호, 1962. 2. 16)

 

  이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박정희 정부는 필요에 따라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방침을 꾸준히 내놓았다. 박근혜는 2012년 대선국면에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2012년에도 우리는 복지국가를 '아직 이룩하지 못한 체제'로 호명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시책으로 등장한 지는 무려 50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수사적인 차원에서 보면, 박근혜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가 복지국가체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없다. 우리는 언어와 실제의 불일치를 본다. 박근혜의 말은 수사적 차원의 전략인 셈이다.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으나, 대내외적 여건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덧붙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전략적으로 간결하고,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파악할 때, '그가 그렇게 말했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 사람의 언사와 생각을 그대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말한대로,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지는 제법 장기간에 걸친 관심과 기다림을 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천으로 자신의 삶을 말한다. 화려한 언사는 듣는 이를 잠시 현혹시킬 수 있지만, 그게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은 빛을 잃는다. 우리가 언어로만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겪어봐야 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