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사랑이라는 말은 24시간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입할수 있게 되었다.
잔뜩 술에 취해 들어간 노래방에서, 화면사이로 반복되는 사랑이란 단어.
사랑이란 말로 시작하는 수많은 노래가 체워진 몇장의 폐이지 앞에서
더이상 부를 노래가 없는 가수의 기분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새벽 늦은 시각, 부끄러운 마음으로 편의점의 계산대에
성인용품을 올려놓을때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밖을 보고 있다.
나는 군밤장수의 성의없는 손버릇처럼 바코드를 찍고 물건을 건네고
돈을 받지만, 막상 도망치듯 달아나는 사람들의 무심한 뒷모습에서
나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쓰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진부함을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詩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의 홈피 여기저기에 스티커처럼 붙어있는 사랑을, 습관처럼 가렸고,
유행가 안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얼굴을 들이미는 사랑에 침을 뱉었다.

집착을 사랑이란 말로 쓰지말고 집착한다고 말하고,
상처를 사랑이란 말로 변명하지말고 상처라고 말하고,
그냥 나는 너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그러나 고맙고 아끼고 생각한다 라는 말로
사랑이라는 말을 대신해주었으면 ,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게 더 많은 낱말로
마음을 전할수도 있었을텐데, 왜 사람들은 쓰다버린 콘돔처럼 의미없는
감정의 부산물조차 사랑이라는 말로 수식하는 걸까.


21세기.

사랑을 하기보다 , 사랑을 광고하고, 판매하는 시대.
자판기의 커피처럼 몇전의 동전과 간단한 터치만으로 우리는 뜨거운 너를
마시는 듯하지만, 정작 1회용 종이컵처럼 사랑을 쓰다 말고 버리는 시대
여자라서 행복한 시대가 아니라, 냉장고가 있어서 행복한 이 시대에서
사랑은 냉장고보다 가볍고, 불나간 핸드폰처럼 켜지지 않는다.

사랑이란 말로 가득한 이 글에 사랑이 없듯,
사랑이란 말로 가득해질 연말에, 우리는 사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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