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시험공부가 여전히 거의 모든 공부를 설명한다. 문제가 많은 사회 풍조지만 몇마디 할 생각은 없다. 이 주제에 대해서, 한국의 교육제도를 통과한 사람치고 할 말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시험과 점수, 그리고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한다. 이제 어느 정도 공부라는 게 어떤 건지 감이 오는 터라,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 배움과 가르침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시험점수로 말한다. '열심히 했다'고 많은 사람이 소리내어 자존심을 세워도 '점수 잘 받았다'는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시험은, 특히 수능처럼 '추론능력'을 중시하는 시험의 경우, 해당 분야에서 모든 지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학력고사와 수능이 다른 까닭은, 이런 차이 때문이다. 외워서 보는 시험이 아니라, 몰라도 핵심적인 줄기를 알면 거기서부터 '맥락적 추론'을 통해 답을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시험인 것이다. 학력고사 때보다는 한층 더 수준이 높아진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까닭에 '원리'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이 '많이 아는 것'보다 강조된다. 요컨대, '다 몰라도 풀 수 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은 다 알지 않고서는 학생의 질문을 받을 수 없다. 과거 학력고사 때에는 '족집게 과외'같은 것이 성행했다지만, 수능체제 이후 그런 식의 과외가 불가능해진 것은, 수능은 항상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고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교육과정에 들어 있는 내용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답안이라고 생각되면, 교과서에 직접적으로 언급되어있지 않은 내용이라도 출제하곤 하는 것이다.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은 시험문제를 잘 푸는 것 이상으로 많이 공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시험을 잘 봤다고 해서 잘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시험 성적은 좋은 가르침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과외를 제대로 하려면 시험에서 요구하는 100보다 적어도 몇 배는 깊이 알아야 학생을 가르칠 수 있다. 물론, 효율적인 교육의 문제에서 이는 학생의 역량에 달려있는 부분도 있다.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필요한 바, 좋은 선생님은 위와 같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어리버리한 학생과 시험만 잘 본 선생의 조합은 그래서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총명한 학생이든 아니든 간에, 가르치는 사람은 시험의 특성이나 과목의 구조를 깊이 터득하고 있어야만 효율적인 학습효과를 낼 수 있다. 

 

  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내용같기도 하지만, 아직도 시험점수가 선생님의 자격을 보장한다는 인식이 파다하다. 양심적인 선생이라면 자신의 자격증만을 내세우며 학생을 가르치려 하진 않을 것이다. 초중고 선생님들도 임용고사 시험을 통과해서 들어오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시험이 곧 교사자격을 모두 충족하진 않기 때문에, 학생들의 학업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교수들도 다르지 않다. 훌륭한 교수가 적지 않다는 건 알지만, 교수들 중에는 학생들의 질문에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가르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저번 주에 과외를 맡아달라는 청을 받고, 학과 공부에 바쁠 것 같아 마다하면서 든 생각이다. 

남부끄럽지 않게 책임지고 일을 한다는 것,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르치는 사람들은 깊이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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