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화에서 시간의 경과는 예정의 형태를 띤다. 사태의 추이는 신들이 정했거나, 별자리에 씌어 있거나, 신탁에 들었거나, 성서에서 보았던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신화와 역사는 공존할 수 없다.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운명의 행로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정말로 새로운 일이란 일어날 수 없다. 반면 역사 개념은 인간이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사람들이 의식적 행위자로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도덕적,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세상이 왜 이럴까에 대해 경험적 인과관계를 찾을 수 없을 때(혹은 기억할 수 없을 때) 신화가 대답을 제공한다. 이런 대답은 세계에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지만, 세계를 불가피한 운명으로 감수해야 한다는 대가가 따른다.(중략) 

  근본적으로 「파사젠베르크」는 신화적인 역사이론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이들 이론의 각본이 - 지속적인 발전이든 불가피한 파국이든 - 어떠한 형태를 취하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벤야민의 지속적인 공격의 대상은 뭐니 뭐니 해도 역사가 저절로 진보한다는 신화였다. 핵시대가 열리고 테크놀로지의 무해성이 의심받기 시작하던 벤야민 당시에도 이러한 신화는 대체로 흔들리지 않았으며, 벤야민은 이러한 신화를 최대의 정치적 위험으로 간주했다. 과거의 벤야민 해석자들은 역사의 흐름에 대한 벤야민의 비관주의를 나치-소비에트 불가침조약이나 전쟁이 임박한 상황에서 비롯된 벤야민의 후기 사유의 특징으로 이해했지만, 「파사젠베르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벤야민의 비관주의는 다년간 지속된(그리고 어쩌면 점점 더 강화된) 관심사였다. 최초의 메모는 프로젝트의 목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역사의 이미지로부터 모든 '발전'의 흔적을 몰아낼 것", "진보 이데올로기를(......)모든 면에서" 극복할 것. 1935년 이전 항목에서는 이러한 논의를 다음과 같이 발전시켰다.  

 『이 저작의 방법론적 목표 중 하나는 진보 이념을 제거한 역사적 유물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역사적 유물론은 부르주아적 사고방식과 선명하게 구별된다. 역사적 유물론의 기본 원칙은 진보가 아니라 현실화다.』 

   따라서 벤야민이 「파사젠베르크」에서 다원적인 사회진화론들을 직접 언급한 것은 진보적 발전이라는 전제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자연선택설"을 비판하는 이유는 "진보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대중화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선택설은 진보 개념이 인간행위 전반으로 확장되도록 조장한다." 반면 "자연사"라는 벤야민 자신의 관념 성좌는 행복한 결말을 가정하지 않는다. 사실 이 관념 성좌는 특정한 결말이 있다는 가정 자체를 부정한다. 

  역사가 전진할 때 자연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벤야민이 강조하듯) 자연은 역사적으로 진보한다. 산업과 테크놀로지라는 새 자연은 생산수단의 차원에서 실제적인 진보를 보여준다. - 그러나 생산관계의 차원에서 계급착취는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도 오류를 낳는 것은 자연과 역사의 혼동이다. 즉, 역사의 야만성을 자연적인 것으로 본다면 사회진화는 신화다. 그러나 산업의 진보가 출발점으로 간주된다면 자연에서의 발전을 역사의 발전으로 오해하는 신화적 오류가 발생한다.  

  벤야민의 후기(1940)논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역사철학테제)의 주장에 따르면, 독일 노동계급은 테크놀로지의 진보와 역사의 진보를 같은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잘못된 정치적 목표를 설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 노동계급은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는 방향과 자기 계급이 움직이는 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공장 노동 자체가 정치적 성과라는 환상으로 이어졌다. 공장 노동은 기술적 진보의 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 어떻게 노동자의 것이 아닌 (공장의) 생산물이 노동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간과되었다. 이들은 자연에 대한 통제력이 진보했음을 인정할 뿐 사회가 퇴행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진보 이념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것이었다. 이들은 진보 이념을 가지고 역사를 평가하고 역사 오류를 지적했다. 진보의 개념이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적 입장이 아닌 무비판적인 현실성을 자처하는 입장"과 동일시되는 것은 "진보가 총체적인 역사의 흐름인 양 행세할 때"뿐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잘못된 동일시의 기원을 추적한다. 벤야민은 "19세기에 부르주아가 권력을 잡았을 때" 진보 개념이 비판적 효력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관습적인 네오마르크스주의 용어다. 그러나 벤야민은 이러한 주장을 파리의 물리적 변형을 중심으로 시각화해낸다. 관습을 상당히 벗어난 시도다.  

2.

  18세기 부르주아 계몽주의는 죄악과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의 도시와, 구원과 영원한 축복의 장소인 천상의 도시를 모순적 양극으로 놓는 신학적 입장에 도전했다. 계몽주의는 인간이 신에게 받은 자기의 이성을 사용하여 바로 지금 여기에 "천상"의 도시를 만들 것을 종용했다. 물질적 행복은 이러한 지상낙원 건설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였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이러한 낙원이 정말로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19세기에 유럽 전역 나아가 전 세계의 수도들은 극적인 변신을 거쳐 그야말로 번쩍이는 진열장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지상-천국의 도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산업 및 테크놀로지를 선보였다. 그중에서 파리보다 화려하게 번쩍이는 도시는 없었다. 19세기 초에서 말까지 살았던 보스턴 시민 토머스 애플턴은 기존의 개념과 새로운 개념을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했다. "착한 미국인은 죽어서 파리로 간다." "이 지상의 도시는 가로수가 늘어선 대로, 상점, 술집, 극장, 좋은 음식과 포도주 등 구체적 이미지"가 너무나도 전설적인 것이어서 "천국의 진주 대문과 황금 계단 같은 희미한 환상을 쉽사리 능가할 수 있었다." 

  도시의 화려함과 사치는 역사상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것이 세속적, 대중적으로 이용된 것은 새로운 점이었다. 근대 도시의 광채는 대로와 공원을 거닐거나 백화점, 박물관, 전람회, 유적지를 방문한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었다. 파리는 "거울 도시(looking-glass city)"로서 군중을 압도하는 동시에 기만했다.'빛의 도시' 파리는 - 처음에는 가스등으로, 다음에는 전기로, 다음에는 네온 불빛으로 - 100년 만에 밤의 어둠을 몰아냈다. '거울 도시' - 군중이 스펙터클이 되는 도시 - 파리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생산자가 아닌 소미자로 반영했으며, 그러면서 거울 이면에 존재하는 계급관계와 생산관계를 은폐했다. 벤야민은 파리의 스펙터클이 "환등상" - 착시를 이용한 환등 여흥으로, 상들이 수시로 크기를 바꾸며 다른 방들과 뒤섞인다 - 이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는 "환등상"이라는 용어로 상품의 기만적 외양을 지칭한 바 있다. 상품은 시장에 등장한 "물신"이라는 것이다. 「파사젠베르크」에서도 상품의 물신적 성격을 다루는 「자본론」을 인용하며, 교환가치로 인해 상품 가치의 원천이 생산 노동에 있다는 사실이 은폐되는 양상을 설명한다. 그러나 벤야민의 출발점은 역사경험의 철학이지 경제적 자본 분석이 아니었으며 새로운 도시 환등상 문제를 푸는 열쇠는 시장 안 상품이 아니라 진열-중-상품이었다. 진열중인 상품에서는 교환가치 역시 사용가치와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의미를 상실하며, 순수한 재현적 가치가 전면에 등장한다. 섹스에서 사회적 지위에 이르기까지 욕망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변형될 수 있었으며, 진열-중-물신인 상품은 사적 소유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여전히 군중을 매료했다. 오히려 도저히 살 수 없을 고가의 가격표는 상품의 상징적 가치를 더했다. 나아가 새로움 자체가 물신이 되었고, 이와 함께 역사 자체가 상품 형식의 구현체가 되었다. 

(출전: 수잔 벅 모스(Susan Buck Morss),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김정아 옮김, 문학동네, 2004, 112-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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