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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이승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1984>에서는 빅브라더가 신어를 만들어 어휘량을 점점 줄여나가며 추상적인 개념을 말살시키며 인간을 조종해나간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포드(Ford)를 숭배하며 사회를 통제하는 세계통제소가 존재한다. 그들은 소마를 대중에게 뿌려 사고를 해야하는 시점을 멈추며 쾌락만을 추구하도록 설계한다. 이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이 쓰여진지 약 70년정도가 되었다. 빅브라더와 포드의 역할을 오늘날의 AI가 할 것이라고 생각한 책이 여기있다. 제31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아르고스>다.
이 책에서는 잠을 거부하고 야근을 더 해서 돈을 벌려는 노동자들의 언어가 줄어든다. 남이 고통스러운 것을 보아도 아무렇지도 않은 감정의 퇴화가 지속되고 있다.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가장 밑바닥에서 기계처럼 일하길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희생되어가는,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는 노동자들을 못본척 하는 우리를 비춘다.
전직 강남구 에스테틱 의사였으나 3개월안에 3억의 빚을 갚아야하는 채무자이자 현재 물류센터 구급대원 정재일이 주인공이다. 그는 1500년 전, 가야의 고분이 묻혀있는 장소와 나란히 존재하는 김해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중이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D구역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눈가에 검은 거미줄같은 핏대를 보고는 그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잠을 반납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감정과 말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한편 이 물류센터의 로봇을 고치는 한 하청업체의 수아가 있다. 그녀는 유일하게 이 공간에서 잠을 자는 인물이다. 그녀는 밤마다 지난 밤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잠을 잘 수 없는 노동자들은 그녀의 꿈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다. 그녀는 이들의 불면이 AI 관제 시스템 '아르고스'와 관계 된 것을 눈치채며 소설이 진행된다.
1500년전의 가야문명과 AI 특화 물류센터, 강남구 에스테틱과 비닐하우스라는 시공간의 대비와 계속해서 교차되는 어떤 지점들이 인상적이다.
주인공이 김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고분군 보존 시위대의 확성기 소리, 테크노밸리 확장 공사의 중장비 소리, 배송 드론의 프로펠러 소리. 이 세 가지가 삼중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 교차점에 나의 비닐하우스가 있었다."(p.23)
그 세력들 중 수기안토, 윈과 같은 다문화노동자들은 물론 비닐하우스촌 거주자들의 자리는 없다. 그들의 이름 역시 중요하지 않다. 수아의 아버지는 굴착기와 함께 흙벽에 묻힌 사고로 죽었으나 하청의 하청 직원이었기에 산재 조차 받을 수 없었다. 서류 어디에도 수아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수아가 재일에게 거래를 제시하는 부분이긴하지만 마지막에 수아가 주인공의 이름을 묻고 '정재일'이라고 대답하며 주인공의 이름이 처음으로 노출되는 장면은 같은 노동자로서, 갑과 을이 아니라 동료가 되는 과정으로 읽헜다.
이후 수아가 고치던 로봇의 모터를 쳐다보다가 손을 갖다대 화상을 입은 수기안토에게 재일이 응급처치를 해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이전 대목에서, 재일은
"로봇을 만지는 수아의 손은, 내가 채혈할 때의 손과 비슷했다. 숙련된 전문가의 손. 나는 피부 밑 3밀리미터의 세계를 다루고, 수아는 패널 안쪽의 회로를 다루었다."(p.118)
라고 관찰한다. 서로 다른 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손들이 서로 교차되어 협업을 하는 이 장면이 나의 최애다.
서울로 다시 돌아갈 재일이 김해에서 얻어간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노트가 증거의 기록으로 쓰일지, 상품으로 쓰일지 궁금하지 않다.
"재일 씨, 나는 체제를 무너뜨린 게 아니에요. 기계.하나를 끈거예요. 기계를 끄면 다른 기계가 켜져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기계 옆에서 다시 렌치를 드는 거예요."(p.222)
이 말을 들은 재일의 주사기는 이전과 다를 것이기에.
p.s 그리고 라면은 항상 옳다. 노동자들의 영원한 동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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