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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사랑과 안정>
저자는 문화인류학 연구자이자 작가로 '감정이 개인과 사회에 무슨 일을 하는지에 관심 있다'. 전작 <증명과 변명>에서는 성과주의와 획일화된 생애 주기 강박 속에서 죽음을 계획했던 20대 남성 친구와의 인터뷰를 담았다. 능력을 증명해야만 생존을 허락하는 사회적 폭력과 그 이면의 좌절에 대해 입체적으로 써냈기에 제 66회 한국출판문화상 올해의 교양서 10종에 선정되었다. 이 책에서도 저자 특유의 대화의 해석, 구조적 통찰은 여전하다.
'결혼'에 대해 90년대생 아홉 명의 인터뷰를 "분해하여 이해해봄"(p.203)에 대한 이 책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있다. "하나, 만을 향하는 문", "둘, 만의 타원"이라는 1,2장을 읽을 때는 <사랑과 안정>이라는 평온한 단어들이 병치된 제목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이 90년대생들이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적 정착지로 수렴하기 위해 필수조건인 '안정'의 실체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마지막 3장 "셋, 세면 고개를 돌려"에서는 기존 정상가족 중심의 결혼 제도를 넘어, 제도 바깥에서도 서로를 지탱할 수 있는 책임과 돌봄의 새로운 '관계의 기하학'- 원뿔을 수직으로 잘랐을 때 생겨나는 열린 쌍곡선은 " 제도적, 사회적 감시로 고립된 둘 만의 세계가 아닌, 어떤 제도를 택하든 사회적 규범에 갇히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세계를 향해 자신의 독특함을 내어놓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p.221) -을 모색하며 대안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40대의 기혼 여성 독자로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90년대생이 온다>를 떠올렸다. 나에게 90년대생이란 탈권위와 '워라밸'을 따지며 조직의 구성원으로서든 소비자로서든 호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특성을 가진 현실주의적 태도를 지향하는 세대에 속한 이들이다. 이 책은 그 90년대생들의 결혼관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국가에의해 의무화된 "어른의 1인분"(p.170)에 대해 강박을 느끼고, 나에게는 생애 주기의 당연한 통과의례로 여겼던 결혼에 대해, "가부장제에 대한 부역(p.176)으로 이해된다는 것을 읽으며 "그들(90년대생)은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공감이 간다. 동시에 결혼이라는 "평범한 삶에의 지향은 규범을 어겼을 때 돌아올 처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근간으로 하고, 이 공포는 고유성과 평범함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만든 뒤 고유성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결국 본래의 목표를 좌절시키기까지 한다."(p.185) 라는 영화 <어쩔수가 없다>의 만수를 통해 저자가 얻은 교훈은, 부모의 잘못을 여과없이 보며 성장해온 자식의 속마음을 읽는 느낌으로 읽혔다.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는 그들의 눈에 얼마나 불행해보였던 것일까.
하지만 3부에서 등을 기대고 측면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옆을, 주변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안정적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힘"(p.325)을 이야기하는 저자를 보며 결혼의 전제들 중 대부분이 우리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맺는 관계의 본질을 되묻고, 사적 결합을 넘어선 연대의 가능성을 사유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랑과 안정을 추구할 90년대생들의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한편 이 책은 다른 지점에서 나를 울컥하게 했다. 나의 아이는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잘파세대고 이 90년대생들과 또 다를 것이다. 나도 저자의 부모님처럼 "네가 무엇이어도 괜찮다"는 멋진 말을 남길 줄 아는 부모가 되고싶다. 저자에게 <러시아 인형처럼>을 추천해주면서 외롭게 두지 않을 친구가 있길. 저자처럼 열린 쌍곡선의 사랑과 안정을 찾아가는 삶을 살길. 이 책이 우리 세대와 우리 아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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