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비사
이정근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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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글에 따르면 이정근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작가’라고 설명한다. <수양대군>, <병자호란>, <계엄령> 등 수많은 저작활동 중이며 오마이뉴스 특별상 수상, ‘남명 문학상 대상 수상’한 바 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쓰인 ‘비사’를 보고 많이 들어본 ‘야사’같은 내용인가 싶기도 하고,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인기에 편승한 책일까, 어느 정도 오해의 시선으로 집어들었다. 이 영화가 상영되기 전 단종은 일반 대중들에게 조선 역사상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어린 임금,이라는 동정론이 지배적이었다. 어쩌면 사육신의 충절에 대해 더 많이 거론되어 왔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 속 단종의 모습은 달랐다. 영월 청령포로 유배될 때 까지만 해도 깊은 무기력과 절망에 빠진 인물이다. 하지만 촌장과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특히 마을에 나타난 호랑이를 활로 쏘는 사건을 계기로 주체적인 삶의 의지를 되찾는 인물로 변화한다. 더 나아가 엄흥도와 깊은 우정을 나누고 그의 아들에게 직접 글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면서 진짜 인간 이홍위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한명회에 의해 사약이 내려졌을 때, 왕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고독하고도 당당한 부탁을 남기는 부분이다.

이 책 또한 그렇다. 정사가 박제해 버린 '불쌍한 어린 왕'이라는 프레임을 깨고 역사 뒤편에 숨겨진 인간 이홍위의 자존감과 뜨거운 고뇌를 생생하게 부활시킨다. 이 책에서 단종은 조선 개국 이래 궁에서 태어난 최초의 적장자였으며, 세종과 문종이라는 당대 최고의 성군들에게 사랑받고 교육받은 무결점의 왕위 계승자로 묘사한다. 단종은 할아버지(세종)와 아버지(문종), 그리고 어머니(현덕왕후)의 삼년상이 줄줄이 겹쳐 국상으로 국혼을 강하게 거부하지만 숙부(수양대군)의 편에 선 많은 신하들의 계속되는 청으로 왕비와 후궁을 동시에 간택해야 했던 국혼의 뒷이야기까지, 정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인간적인 삶의 궤적을 촘촘히 복원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종이 느꼈을 왕으로서의 압도적인 자부심과, 그 거대한 왕관의 무게를 버텨내야 했던 외로운 소년의 고뇌를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또, 단종의 비극의 원인을 단순히 수양대군의 개인적 야욕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계유정난에서 드러난 성리학적 명분과 대의라고 주장하며 권력 앞에 굴종해 버린 신하들의 변절, 한명회를 필두로 한 책사들의 치밀한 비사, 특히 사육신의 거사 실패 후 벌어진 고문, 처형, 멸문지화에 대해 생생하게 담았다.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들을 향한 뻔한 동정을 자극하는게 아니라 고문앞에서도 당당했던 사육신의 기개와 금부도사 왕방연으로부터 사약을 받아 든 단종의 결단에 대해 담담히 서술하기에 권력에 대해 생각해보는 지점을 마련해준다는 점이다.

“570년이 흐른 오늘날,
성공한 쿠데타도 단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다.”-단종을 위한 변명

저자가 <단종비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명백하다.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이루어진 단종의 복권처럼 권력이 일시적으로 진실을 가릴 수는 있어도 영원히 묻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정의는 반드시 제자리를 찾는다는 메시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준다.
#단종비사#이정근#하움출판사#왕과사는남자#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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