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마지막 획
청예 지음 / 열림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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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젊은 화가 옹고경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용의자는 같은 학과 동기 반공후이다. 이 둘과 바다라는 친구까지 셋은 학과 동기로 이렇게 셋이 삼인방으로 대학생활을 함께 했다. 바다는 반공후의 남동생 태오의 연인이 되고자 한다. 이름만 들어도 화가들의 이름이 떠오르듯이, 반공후는 범죄행동분석관 김진유에게 자신은 반고흐가 환생한 것이라고 현재 주장하고 있다. 고경은 고갱으로, 바다는 아마도 실제인물인 라파드와 테오의 아내 요한나를 합쳐놓은 인물로 보인다. 반고흐의 덕후들이 많은 한국에서, 그것도 스릴러 장르로 탄생시킨 작가의 발상이 흥미롭다. 게다가 예술가를 소재로 다룬 덕에 ‘예술은 무엇인가’, ‘예술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사람들의 인정은 예술가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등 묵직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인물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또 챕터 구성이 특이하다. 이 소설은 0이라는 챕터의 ‘공소권없음’에 대한 짧은 공문으로 시작한다. 공문 다음 챕터는 6장으로 고경이 살아있을 때의 합동전시 이야기이다. 다 읽은 후 다시 챕터를 되짚어보면 이 소설 마지막 1장에서는 반공후와 옹고경의 첫 만남을 다루고 있다. 가장 높은 수의 9장은 살인 사건의 날이다. 0 챕터는 범죄행동분석관 김진유와 피고인 반공후의 현재 대화 내용으로 중간에 자주 등장하며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번외로 1890년, 오베르쉬르우아즈의 여름을 담은 반 고흐의 이야기를 다룬 챕터는 ‘-1’이다. 왜 이런 서술방식을 택했을까, 그 이유는 제목에 담겨있는 것 같다. 반 고흐의 기법을 챕터에 담았달까. 임파스토(물감을 아주 두껍게 칠하여 붓이나 나이프 자국이 그대로 남게 하는 기법)와, 길게 이어지는 선을 추구하기보다 짧고 강렬한 획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 또는 소용돌이치는 곡선(Swirling Lines)등 반 고흐의 획은 화가의 손동작이 그대로 읽히는 거칠고 솔직한 붓자국을 노출한다. 나는 작가가 의도한 챕터의 구성이 이런 반고흐의 획을 닮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읽었다.

인상적인 키워드는 ‘새’이다. 공후는 삼각김밥을 먹는 고경을 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의 곁에 마른 참새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그녀가 새에게 밥알을 주며 환히 웃었다. 공후는 그 장면을 영원처럼 바라보았다.(p.173)” 이 장면에서부터 고경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고경은 새 그림을 주로 그리며 (“그깟 새 타령하는 작품이 뭐 그리 잘났다고.”(pp.45-46)) 사건 발생일에, 분수대에 설치한 CCTV에서 야간비행에 지친 새 한 마리가 렌즈를 가리기도 한다. 스무살의 고경은 참새에게 삼각김밥의 밥알을 나누어주고, 스물여덟의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에 있는 분수대에서 새들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한다. 고경이라는 인물의 결을 보여주는 것이 새이기도 한 반면, 고경이 공후에게 “너, 참새를 닮았어.”(p.175), 또는 “나는 그래도 네가 제일 특별해. 알지이? 너는 나랑 다르게 새처럼 자유로워 보여.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가 너한테는 없잖아아. 부러워어.”(p.99)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유롭지만 혼자서 그림을 그리는 공후는 외로움에 고통받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혼자 자유롭지만 외로움에 고통받으며 날아야 하는 새와 마음대로 날 순 없지만 새 떼 중 일원이 되어 안전함을 보장받는 새, 둘 중의 선택을 이 ‘새’라는 키워드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작가의 말을 대신한 ‘소설, 쓰다’에서 밝힌, ‘본다빈치뮤지엄에서 열린 클로드 모네의 디지털 전시’에 나 역시 가 있었다. 나 역시 그때의 전시를 기억하는 이유는 슬이와 애아빠를 끌고 간 최초의 전시회였기에 기억한다. 그때 내 옆에 청예 작가님이 서계셨을지도, 하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제공되는 QRcode에서는 아마도 작가님이 직접 찍었을, <레 베세노 마을> 사진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소설속에서 각 작품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는지 다시 상기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청예 작가 특유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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