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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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으로 등단 4년 만에, 90년대생 작가 중 최초이자, 최연소(김애란 작가 역시 만33세) 타이틀을 가지고 2025년 제4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장편과 중편소설 한편씩을 펴냈고, <사랑과 결함>에 이어 이번 <너의 나쁜 무리>가 두 번째 소설집이다. ‘흠결’은 예소연 작가의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무늬같은 명사다. 왜 그러고 살까? 싶은 인물들에게 서사를 만들어주는 작가다. 이 책에도 묶여있는 <소란한 속삭임>의 ‘속삭임’, <너의 나쁜 무리>의 ‘너의’라고 방점을 찍어주는 단어들이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TTS 속삭이는 소리 버전의 쇼츠처럼, ‘너에게만 알려주는거야’ 비밀 얘기하듯 작가는 자기가 만들어낸 인물들의 작당에 독자도 한 패가 될 것을 권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나 역시 기꺼이 그 나쁜 무리의 멤버가 되어 있다. 책 표지에는 ‘너의’와 ‘나쁜 무리’의 사이의 간극이 꽤 긴데 읽고 나서는 바짝 붙어있게 되는 효과랄까.

이 소설집에는 흠결이 있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인물들의 애증 어린관계를 다룬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다.
<추운 뺨에 더운 손>은 어렸을 적, 그러니까 6살에서 아홉 살 무렵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나’와 기문의 이야기이다. 기문이 ‘나’에게 연락을 하면서 재회하게 되는데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서로 들키지 않으려 애썼던 어머니들 간의 암투(!)가 녹아있다. 제목을 연상하며, 추운 뺨에 더운 손을 언제 갖다 댈 것인가, 그 장면을 기다리며 읽어보지만, 나오지 않는다. 뺨에 뺨을 갖다 대거나 손등으로 뺨을 쓸어대긴 한다. 하지만 ‘더운 손’은 등장하진 않는다. 어머니의 공범으로 살아온 ‘나’는 그의 추운 뺨에 나의 추운 뺨을 갖다 대었을 뿐이란 사실에 이 둘의 관계가 서늘하게 느껴진다. 기문이 ‘나’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함께 볼 수 있는 게 마임이야. 내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믿음을 통해서(p.18)”라며 이야기할 때, 기문이 ‘나’에게 바란 것은 온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함께 마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갖지만, 무정이라는 이름의 할아버지가 기문의 차를 훔쳐달아나는 사건을 통해 결국 진심과 함께 한 시간은 사라져버렸다. “그건 없는 거야. 우리가 본 적도, 볼 수도 없는 것. 그러니까 있었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고.”(p.35) ‘나’는 기문이 찾고자 했던 금두꺼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며 (물론 기문의 입장에서 금두꺼비는 핑계고 ‘나’를 만나고 싶었던 것일 거라 믿지만) 그들의 관계에 종료를 고한다. “하고 싶지도 않은 일, 훔친 적도 없는 물건들 때문에 나는 자꾸만 억울해졌다. 어찌 됐든 나는 분명 기문이 보고 있는 것을 보았고 흐르는 것을 정말로 함께 닦아내었다.”(pp.36-37)이라고 속마음을 내비치는 ‘나’ 역시 씁쓸하다. 이후부터가 예소연 작가의 인물의 디테일이 돋보인다. 억울한 캐릭터인 ‘나’는 이 소설 맨 끝에서 무정의 절박한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도벽이 있는 엄마의 딸로 성장해왔고 지금은 혼자 산다. 엄마는 가끔 집에 몰래 들어와 훔칠만한 물건을 찾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호박이(개)를 키우며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는 인물이다. 기문을 포용할 정도의 여유는 없지만 호박이는 책임지는 캐릭터로서 그는 차를 훔쳐 달아나는 할아버지의 절박을 이해하는 인물이다. 본인역시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단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구나 싶다.

나는 여기서 한 편을 소개했을 뿐이지만 다른 여섯 편의 작품 속 인물마다 흠결의 디테일이 생생하다. 그리고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나는 <작은 벌>에서 이중일이 진정희와 서송이씨와의 관계를 물었을 때 친구 ‘사이’라고 대답한 것, <아무 사이>에서 ‘나’가 두부 할머니에게 이름이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의식하는 것, 또 <통신 광장>에서 여자가 ‘나’에게 “혹시 절 간병인이라고 소개하던가요?”라고 물었을 때 “좋은 사람이라던데요.”(p.228)라고 대답하던 장면이 그렇다. 갑과 을일수 있는 관계에서 흔들리는 시소를 수평이 될 수 있도록 잡아주는 작가의 손이 느껴졌다. 또 이 소설집에서 처음 펴낸 <너의 나쁜 무리>에서는 <추운 뺨에 더운 손>의 ‘나’ 선이가 도벽이 있으면서 사고치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캐릭터처럼,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인 할머니 ‘여사’의 손에 자란 ‘유선’이 주인공이다. 소설 처음에 등장하는 중락이 아저씨는 ‘나’에게 여사에게서 도망치라고 한다. 그때의 ‘나’는 열두살이기에 도망칠 수도 없는 나이이다. 그렇게 자란 ‘나’는 결국 여사의 자유분방한 연애 생활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나는 <추운 뺨에 더운 손>의 ‘나’ 선이보다 <너의 나쁜 무리>의 유선이를 좀 더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유선이와 이해신(남자친구)의 관계에서 “그럼 우리가 우리를 구제해야겠네.”(p.95)라며 여사보다 훨씬 주도적인 인물로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전체적으로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를 독자마다 상상하게 한다. 그 상상은 독자의 흠결마다 다른 무늬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예소연 작가의 앞으로의 책들 역시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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