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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저자의 한국 이름은 ‘노자’로 러시아를 가리키는 ‘노’에 아들 ‘자’, 즉 ‘러시아의 아들’로 지었다. 이 책 중 ‘소독전쟁’(p.106)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읽으며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세계사를 배운 나는, 새삼 그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러시아의 노동자계층의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그는 유태계 러시아인이라는 소수자 위치에서 구소련의 차별을 경험했고, 2001년에는 한국으로 귀화하였으나 교수자리가 없어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개인적 여담으로 ‘노어’를 ‘노르웨이어학과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일까!)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26년째 가르치고 있다. ‘경계인’, ’이중의 타자‘라 불리는 별명, 그 자체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생 여정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사회의 인종주의, 군사주의, 국가주의를 보수, 진보 상관없이 비판하여 ’모두까기 인형‘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의 이런 비판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줬다. 그래서 그의 솔직한 책의 출간이 반갑다.
이번 책 표지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상 앞 철조망이 인상적이다. 프랑스인 조각가 바르톨디가 만든 이 여신상 받침대에는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지치고 가난하고 고단한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라고 적혀있다. 이민자와 난민을 받아들여 “인력과 인재의 유입으로 결국 번영을 이루는 ‘인간 수입형’ 경제 모델‘”(p.9)의 성장을 이뤄온, 이전 미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앞에 철조망이 놓인 셈이다.
저자는 <야만 시대의 귀환>, 부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이라는 책을 통해 1920년대의 패권국가였던 영국과 2020년의 패권국가인 미국을 비교, 대조하며 몰락의 메커니즘에 대해 짚어낸다. 당시 영국의 철강 제조업이 독일에 추월당하고 오늘날 미국의 제조업을 중국에게 내준 상황부터 시작한다. 제조업이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건장해야 상위 3%에 불과한 인구지만 전체 30%이상의 부를 거머쥔 자본계층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을 견제할 수 있다 라고 나는 읽었다. 당시 영국은 클레멘트 애틀리라는 수상이 그런 노동자계층의 세력에 힘입어 ’노동당‘을 만들어 소련을 모방한 무상 의료체계나 핵심기업 국유화, 복지 국가의 골격을 만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권국가의 지위는 잃었지만 금융업에서의 선진국 위엄은 오늘날에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은 이전 트럼프집권과 바이든의 시대를 거치며 제조업이 2% 정도 늘긴 했지만 중국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 10%에 불과한 미국의 “다수의 노동자들은 이미 노조와 인연이 없고 그저 ’개인‘으로서만 사회적으로 존재”(p.11)한다. 이 힘없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거라고 생각하는 관세와 같은 보호주의 의제를 내세운 정치를 하고자 하는 트럼프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한다.
또한 미국만 쳐다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극우에 대해 미국이라는 백일몽이 이제 종결했음을 알리며 우리의 경제이익은 미국보다 중국이 더 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보수, 진보와 상관없지만, 자신에 대해 “노르웨이에서 저처럼 뚱뚱한 몸은 하루에 1~2시간 운동도 하지 못하고 값싼 음식을 먹는 동유럽 출신 이민 노동자의 전형적인 몸입니다.”(p.70)라고 셀프디스(!), 아니 자신에 대해서 조차 객관화되어 있는 이 푸른 눈의 한국인의 시선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홀로코스트, 유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사람들이 답답했는지 ’이스라엘 너는 누구냐‘라는 제목으로 챕터 하나를 할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구소련에서 탄생하긴 했지만 친척들은 주로 이스라엘에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태동기, 책으로 배운 사회주의에 홀릭한 영특한 유태인들이 많았기에 (우리나라의 근대 지식인들이 주로 사회주의자였듯이) 러시아, 특히 우크라이나로 건너간 유태인들의 수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다. 주로 고리대금업자(셰익스피어 때문이겠지)였던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금융업에 종사하며 미국의 정치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른다는 음모론에 대해 음모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며, 한 달 전인가 일론 머스크가 보이지 않는 권력층이 존재한다고 인터뷰하던 영상을 떠올리며 저자와 일론 머스크 둘 중에 누가 거짓말쟁이일까를 살포시 생각해보았다. 그 외에도 우리가 미국을 위해 베트남 파병을 보낸 창피한 역사가 있는 것처럼, 북한 역시 러시아를 위해(푸틴이 2012년 북한의 외상빚 110억원 정도를 손실처리해줬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파병을 그런 관점에서 본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패권국가로서의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며 우리나라가 갈 길에 대해 크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트럼프가 X에 한마디 올릴 때마다 거기에 대해 해석하고자 하는 수많은 전문가 유투버들이 있지만(나 역시 열심히 보는 편이지만) 그런 채널이 현미경이라면 이 책은 망원경처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그런 시각을 제공해준다. 미국에 대해, 유대인에 대해 트럼프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적극 추천한다. (박노자교수님이 최근 연구중인 1920년대와 30년대를 이렇게도 이을 수가 있구나,라는 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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