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의 밤
조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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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도형우가 스물아홉이었던 어느 날, 동생과 어머니가 울릉도행 배에서 동반자살한다. 이후 다니던 카드회사를 그만두고 트랙커로, 또 자살사별자로 10년을 버텨온 서른 아홉이 되었다. 영덕에서 하차를 끝내고 이동하다가 바다에서 프리다이빙을 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게 된다. 아버지가 프리다이버였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그는 관심있게 지켜본다. 이후 가슴이 답답할 때 마다 그곳을 찾고, 프리다이빙 모임의 사장이자 마리아나펜션의 주인인 진여진은 같이 해보자고 제안한다. “물 밖에서 숨 쉬는 것보다 물속에서 숨 참는 게 더 쉬운 날도 있거든요. 좋아요, 깊이 들어가면.”(p.54)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라곤 숨을 참는 것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살희망자 또는 사별자들의 프리다이버모임에 참석하게 되는 주인공이다.
“우리,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말자. 결말을 알 수 없는 게 살아 있는 이들의 삶이라면, 결말은 알고 있되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게 스스로 떠난 이들의 삶이니까. 결코 다 알 수 없지······. 죽음의 원인에서 내 탓을 찾지도 말고. 죽음으로 그의 삶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기억하면서, 그렇게, 그렇게.”(p.82)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은 남겨진 어머니와 동생 도은우에게는 우울과 예민을 남긴다. 형 도형우만큼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현기와 세희같은 친구들이 예쁜 추억으로 남은 생존형 인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생 은우는 달랐다. 사춘기가 오면서 그의 방에는 바다에 대한 책들로 가득 찼고 “해류가 말이야, 우리를 아빠 있는 곳에 데려다주지 않을까?”(p.96)라고 형에게 묻는다. 결국 아빠가 선택했던 바다로 은우 역시, 아빠를 따라간다. 그리고 어머니. 사랑했던 남자와 함께 가버릴 수 있었지만 남겨질 아이들을 위해 바다를 포기했던 그녀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삶 속에서도 끝내 놓으려 하지 않은 모성애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자신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은우가 바다를 선택하자 주저 없이 동행을 선택한다. 다시 형우로 돌아와서, 회사가 멀다는 이유로 독립한, 생존력 강한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을 이겨냈던 방식 그대로, 어머니와 동생의 동반자살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려 한다.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트랙커로 직업을 변경하는 것도 그가 살기 위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트랙커는 “매일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삶.”(p.108)이다. 항상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직업을 십년 동안 달려보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무너져 서른 아홉의 형우가 좀처럼 버텨내지 못한 안타까운 모습들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사실 서른 아홉의 형우를 의미하는 삼구 혼자서는 몰랐겠지만 구와 일구, 그리고 이구와 함께 하며 그는 그동안 회피해온 삶을 목격한다.

아쉽지만 나는 인공적인 맛이라 좋아하지 않았던 팝핑캔디의 위력이 중반부 이후부터 종종 나와 아홉 살의 나에게 ‘좀 참고 먹어봐라’하고 싶은 지점이 몇 번 있었다. 이 책은 위로를 남에게 받아 채울 수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아홉 살의 나와 열아홉 살의 나, 그리고 스물아홉, 서른아홉의 나를 만날 수 있으니 그들을 만나 “꼭 안아주고 싶”(p.351)은 사람들이 읽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워 컴퓨터 배경화면으로 종종쓰인다는 스페인의 남부 말라가의 밤바다에서 위로받는 형우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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