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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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대형 간판 예술가들의 작품이 자주 찾아오는 우리나라 전시회장. 하지만 인상주의처럼 유명한 화풍이나, 사람이 이렇게 불행할 수 있을까 싶을, 고된 운명의 화가, 고흐, 또는 현대인의 불안을 담았다는 뭉크의 그림처럼 유명한 화가의 이름과 작품에 가려져 느끼지 못해온, 온전히 작품을 통해서만 느껴지는 그런 예술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나는 그런 갈증을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비엔날레에 들뜨지 않는다. 미술사 전공자로서 나태하다고 한다면 굳이 변명하고 싶지 않다.”(p.142)라는, 뒤늦게 미술사를 전공한 우진영 저자만의 소신 덕분이다. 그는 화려한 비엘날레 대신 근대작가의 작품 하나와 그에 상응하는 현대작가의 작품을 이 책에서 이어 글로 써냈다.

총 3부로 1부 ‘나와 당신의 도시’에서는 근대작가와 화가 작가가 어떻게 변화하고 공명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담겼다. 가장 처음에 소개하는, 근대의 경성을 그린 김주경 작가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1927년)과 현대의 서울을 그린 정영주 작가의 〈도시-사라지는 풍경 531〉(2020년)으로 답한다.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은 엘리자베스 키스와 같은 외국인이나 나혜석, 눈이 보이지 않는 김기창 작가의 작품들을 다룬다.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과 계절을 잇는다.

인상적인 부분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우진영 저자가 민준홍 작가에게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에 대해 묻자 “80억이 넘는 동일 종이 존재하는 세상에는 80억 개의 감상평이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그로부터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p.57)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전시회를 좋아하면서도 나의 이런 성향에 대해 양가적인 마음이 있었는데, 저자의 이런 인터뷰는 앞으로 미술관을 좀 더 수월한 마음으로 가서 보고와도 된다고 허락을 받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또 산수화라고 하면 중국의 대가가 한 그 방식 그대로 따라하는 게 산수화의 기본 공식 같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것을 깬 이상범 작가의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현대 한국화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고유한 형태와 정서를 창현함으로써 완전히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1961년 이상범의 글이다. (p.66) 전통적인 작품이라고 오롯이 전통만을 담고 있는 틀에 박힌 작품이 아니라는 것. 영향은 받았겠지만 우리의 정서를 표현하려는 이상범 작가의 고민이 느껴진다. 또 이에 대해 “나의 산수화를 개척하겠다고.(...) 현실에 발 디딘 풍경을 그려내는 이상범의 산수화는 시작되었다. 예술가란 신비롭다. 갇힌 시대에도 창문을 연다. 고맙다.”(p.65) 라고 쓰는 저자의 마음이 유난히 따시다.

그 외에도 “끌림의 이유를 생각하다 여러 질문을 건네게 된다. ‘여성일까, 소녀일까?’ ‘그림 속 화면은 환상일까, 실제일까?’ ‘어떤 감정으로 피리를 불고 있을까?’ 자세히 알고 싶어 그림에 다가갈수록 실제인지 비현실인지 혼란스럽다.(...) 다시 보니 작은 나비 인 줄 알았던 생명체는 애벌레였다. 틀이 깨진다. 머리가 아파오다 갑자기 맑아졌다. ‘그냥 내 식대로 해석하지 뭐’라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제야 조금은 난해한 전시의 기획 의도보다 그림의 의미가 선명해짐을 느꼈다.”(p.100) 미술 관련한 다른 책들처럼 화가의 스토리와 작품을 연결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림을 보고 느낀 바를 글로 풀어낸 점이 이 책의 매력으로 보인다. 그림에 대한 전문가적인 시선만 있는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 위로받는 관람가의 시점이 느껴져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훨씬 공감하면서 그 시선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했던 작품들을 본 경험을 써서 그런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얼른 전시회에 가고 싶다. 저자처럼 오롯이 그림에서만 낚아올릴 수 있는 질문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싶다.

옥에 티가 있다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 <제인 에어> 속 제인의 말이다.”(p.106) 음. 샬럿 브론테로 알고 있었지만, 이마저 화가의 명성에 기대지 말고 오롯이 그림만을 온전히 보길 바라는 저자의 훼이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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