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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평점 :
신맛이나 쓴맛에 비해 단맛에는 중독되기 쉽다. 단맛은 세로토닌의 수치를 높여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파민이 가져다주는 자극적이고 짜릿한 쾌감, 설탕을 위해 우리 인류는 수많은 전쟁과 약탈로 달콤한 비극을 역사로 남겼다. 이 책의 저자는 30여 년 동안 많은 국가를 거치며 물자와 인구의 이동, 특히 서구 제국주의의 흔적 등을 탐구해 왔다. 그렇게 작년에는 <향신료 전쟁>을, 이번에는 <설탕 전쟁>을 써냈다.
과거에는 후추가 검은 황금이라면 설탕은 하얀 금이었다. 당시에는 사탕수수 재배와 가공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탕수수가 자라는 덥고 습한 나라들의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그도 모자라 대서양 노예무역에 나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설탕에 의한 제국주의적 탐욕에 희생된 나라들 중 아프리카 대륙 중에는 아이티공화국이,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몇 년 전,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단이 내한 했을 때 축구선수들이 우리나라의 안전한 분위기에 놀랬다거나 네이마르같은 힘쎈 운동선수가 자국에서는 개인 경호원을 붙여 다닌다는 뉴스는 의외였다. 축구선수로서 몸값이 높기 때문일까,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이 <설탕전쟁>의 이야기를 따라 엿 보게 된 브라질 역사 속 제국주의의 잔혹함은, 현재 브라질의 안전하지 않은 분위기가 이해되기도 했다. 중세에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찾아낸 미지의 땅, 브라질은 제국주의 초기시절에는 나무벌채 외에 다른 이득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곧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섬의 사탕수수 재배가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유럽인들에게 브라질의 더운 날씨와 비옥하면서도 벌채된 땅이라는 조건은 사탕수수밭으로 합격점이었다. “유럽인과 함께 유입된 병원균에 매우 취약”(p.123)하여 본토 원주민만으로는 부족했던 노동력은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대체되었다.
“현재 브라질은 백인과 혼혈이 전체 인구 중 각각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둘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90퍼센트에 달한다. 흑인은 10퍼센트가량이며, 원주민은 1퍼센트 미만에 불과하다. 수백 년 전에는 포르투갈 본토 인구와 비슷한 규모의 원주민 인구가 브라질 땅에 거주했지만, 지금은 백인과 혼혈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다인종 국가가 된 것이다.”(p.124)라는 문단을 읽으며 브라질은 설탕의 달콤한 비극이 만들어낸 나라였음을 알게 된다. 또한 사탕수수 재배가 가장 활발했던 ‘생도맹그’는 지금의 아이티 공화국으로 “카리브해로 팔려 온 노예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세운 최초의 독립 국가”(p.83)라고 한다. 당시 농장을 운영한 백인들은 가장 많은 이익을 챙겼겠지만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가장 혹독한 환경이었을 생도맹그에서 흑인 노예들이 직접 싸워 쟁취해낸 독립 국가라는 점이 뭔가 김영하작가의 <검은 꽃>에서 읽었던, 하와이로 떠났던 한국인들이 독립군을 지원하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으로 남았다는 이 책의 뒷이야기와 맞물려 울림을 주기도 했다.
4장 ‘채찍 아래에서 함께 이룬 흑인 노예 공동체’의 이름이 ‘마룬’이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Maroon5가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망친 흑인 노예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를 마룬Maroons”(p.72)이라고 한다. “윈드워드 마룬의 지도자는 아프리카 아산티(현재의 가나)왕국의 아칸족 출신 퀸 내니라는 여성이었다. 신출귀몰한 게릴라 전술의 대가로 이름을 떨치며 영국군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인물이다. 그녀는 현재 자메이카의 국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p.73) 마룬의 지도자가 여성이라는 것과 진짜 이름이 아닌 ‘퀸 내니’라는 이름이 기억에 남았다. 억압에 저항하는 이 여전사의 얼굴은 1975년 부터 자메이카 500달러의 얼굴에 담겨있다고 한다.
단맛은 중독되기 쉽다. 중독은 집착하게 만들고 더 강한 자극만을 느끼고 요구하게 된다. 중독된 맛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날 대놓고 나라가 나서서 이렇게 욕심을 내세우지는 않는다.(라고 쓸까했는데, 트럼프가 대놓고 관세정책을...) 하지만 그 자리를 이제는 거대기업이 차지했다. 지금 내가 저렴하게 사용하고 있는 나이키 신발이 설탕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죄책감이 그 나라 사람들의 오염된 강이나 나이 어린 노동자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회피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최소한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온 것인지는 알고 써야하지 않을까? 다행히 기업은 소비자의 선택에 민감하니 나의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합쳐져 집단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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