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의 가격 - 기후변화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
박지성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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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영어 원제는 <SLOW BURN>,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p.11)이라는 뜻으로, 직역하면 ‘느린 연소’다. 우리나라에서는 <1도의 가격>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경제학에서 유명한 단어인 ‘보이지 않는 손’처럼 ‘보이지 않는 비용’을 표현하고자 한 표지가 강렬하다. 100달러 지폐가 작은 불에 의해 느리게 연소 중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펜실베니아 주 대표로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정치가이자 피뢰침 발명가, 외교관, 그리고 금융가로서 미국의 경제와 제도를 형성한, 그야말로 미국의 정체성 그 자체-의 얼굴이 타들어간다. 그렇게 SLOW BURN이라는 글자조각만이 남은 상태를 표현했다. 이 책은 태풍처럼 빠르게 재앙처럼 다가올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많아 보인다. 한편 올해 1월,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두 번째로 탈퇴했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아무리 작은 불이라지만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남은 조각들 마저 다 재로 변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빌 게이츠가 환경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는, 와튼스쿨의 한국계 미국인, 환경경제학자 박지성 교수님이 집필했다. 한국의 이정모 관장님부터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추천사를 달았는데 그 중 커커스 리뷰가 인상적이다. “뜨거워진 세상을 이처럼 다각도로 조명한 글이 있을까?” 그렇다. 이 책은 1도 상승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 특히 우리가 간과하는, 보이지 않는 피해에 대해 최근 10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눈에 보이도록 정량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그것을 분석한 내용이다. 개인적인 노후자금도 불확실한 가운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에서 파생할 비용을 치르고자 하는 한국인은 몇이나 될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쳐본다.

총 4부로 1부 ‘1장 빠르게 생각하기와 느리게 생각하기’에서는 기후변화를 직관적으로 바라볼 지, 이성적으로 따져보며 생각할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이후 더운 날씨 때문에 학생들은 학습에 대해, 노동자들은 노동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피해나, LA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이후 피해로 생각하지 않았던 연기로 인한 영향에 대해 논한다. 2부에서는 더위가 미치는 건강과 범죄율 등에 대해 다루며 3부는 영국, 특히 30도가 넘는 날이 일년에 하루 밖에 되지 않는 런던사람 제임스가 에어컨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 싱가포르에 출장 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 엘베가 없는 건물 4층에 사는 태국 할머니가 30도가 훌쩍 넘는 아침부터 노점상 가판대에 앉아있는 이야기, 그리고 인도 농부인 라즈가 가뭄으로 2년째 가족을 먹여살리기도 힘든 현재 상황에 대해 묘사하며 이 넷을 대비한다. 기후변화가 가져다주는 심각한 부의 불평등이다. 4부에서는 분명 느린 연소로 기후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후재앙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현재 가고 있는 온난화의 길이 딱히 재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순간, 기후변화는 한정된 정신적 관심과 정치적 자본을 굳이 할애할 이유가 없는 문제로 전락한다.“(p.288) 당장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라는, 지금은 성인일 그레타 툰베리를 이해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당장 내일 집이 무너질 것이다라는 것과 10년 후에 무너질 것이다라는 내용은 같은 문제지만 우리에게 정반대의 행동을 초래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피해를 정량화한 비용을 데이터로 설명하는 저자다. 이런 면은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던 것과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달랐던 <팩트풀니스>와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왜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아니고 기후변화라고 썼을까?' 궁금했는데 재앙수준의 기후위기보다 느린연소 중인 기후변화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이 책에는 유럽과 미국이 탄소를 그동안 꽤 감축해왔다는 데이터가 있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 중공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탄소깡패는 우리라는 뉴스가 스쳐지나간다. 국민들을 설득시키고 탄소를 감축시킬 수 있는 방안을 기업과 적극적으로 펼쳐나감과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 세워야 할 정책들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생각들로 불안해진 나에게 저자는 “엄격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을 취하고 가상의 세계 시민을 상정해 즉시 정량화할 수 있는 느린 연소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데이터는 이미 우리가 현재와 미래 세대의 집단적 행복에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끼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고려만으로도 공격적인 배출량 감축이 정당해진다는 뜻이다.”(p.308)라고 말한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지 말고 가능한 한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p.13)이라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는 저자의 속내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한마음으로 경제적 고려를 시작하는 단계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의 동아줄을 잡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믿어보고 싶다.

p.s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진다는 책 제목에 충격받는 슬이에게 읽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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