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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한국사
김재완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6월
평점 :
역사를 다룬 책을 눈앞에 두자면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역사란, 역사학자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정의가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명언이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그리고 이들의 대화가 역사를 살아 숨 쉬게 만든다는 것. 저자는 역사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로 “나의 안전한 오늘과 후세의 안온한 미래를 위한 의무이자,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며 역사를 쌓아나간 이들에게 최소한의 염치를 지키기 위함”(p.5)이라고 말한다. 지난 12월, 전 국민의 트라우마와도 같은 비상계엄 덕분(!)에 올해 전반에 출간된 역사와 정치 카테고리의 책 서두에는 대부분 전 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다. 이런 부분이 저자가 말한 최소한의 염치일까, 생각해본다. 출간하면 끝일것만 같은 책 속에 살아있는 오늘날의 역사가 느껴진다.
김재완 저자님은 채널 B tv 뉴스의 ‘역사썰명회’ 단독 패널이자 <찌라시 한국사>, <찌라시 세계사>를 쓴 역사 스토리텔러이다. 기록이 있어 공식적인 역사는 아니지만 민간의 구전을 포함한 사적인 기록물과 야사, 설화를 활용하여 흥미진진하면서도 기묘한 이야기들을 이 책으로 묶었다.
총 4장으로 1장 ‘한국사 곳곳에 숨겨진 수수께끼’에서는 세한도, 정감록, 첨성대, 광개토대왕릉비를 다뤘다. 가장 첫 번째 주인공인 세한도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와 함께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기까지 근대와 현대 한국사가 함께 녹아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특히 광개토대왕릉비 부분을 읽으며 분개했다. 전에는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를 마음대로 날조하더니 잃어버린 30년을 보내게 되자 이제 미국을 상대로 힘이 커진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우리나라를 찍어 누르려 하고 있었다. 문과생들이 ‘문송합니다’만 되뇌일 때가 아니었다.
2장 ‘조선사를 관통하는 무덤 이야기’에서 나는 ‘이런 주제가 대체 왜?’ 라고 속으로만 되뇌었던 영화 <파묘>의 인기 이유를 깨달았다. 우리 조상들 DNA에는 풍수지리에 의한 묫자리의 중요성이 깊게 새겨져있었음을 읽었달까. 가끔 서울 노른자 땅에 위치한 높은 빌딩에 어떤 성씨의 회관을 보며 저런 곳은 어떻게 운영, 유지 되는가, 궁금했다. 그 이유를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400년 산송’에서 찾았다. 400년 동안 싸우기 위해서 필요한 그 집안의 재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로 양반은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니구나, 하며. 또 이 두 세 가의 싸움 중, 박수하가 “탁하고 쳤을 뿐인데”(p.71) 죽어버렸다는 부분을 읽으며 저자의 기묘한 필력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장 ‘끝나지 않은 독립운동에 대하여’에서는 스우파3의 쿄카가 띄운 ‘오사카’에 대한 호감이 국모의 원수를 갚은 고영근 부분을 읽으며 다시 장엄(!)해졌다. 이런 분들에 대해 최소한의 염치를 지켜야 한다는 저자의 ‘들어가며’를 떠올렸다. 독립군들의 선택에 다시한번 경의와 존경을 표하게 된다.
4장 ‘1,500년의 시간을 건너는 음모론의 실체’에서는 한국사를 관통하는 핵심 음모론들을, 5장 ’이런저런 직업을 가진 이들의 기막힌 신세‘에서는 교과서에 적혀 있지 않은 조선의 궁녀와 내시, 임금의 세작이었다는 화가, 조선 최고의 부자이자 외교 문제 해결사이기도 했다는 역관, 미천한 신분이었으나 세계인으로 우뚝 선 신라의 사업가 등 비주류에 대해 다뤘다. 역사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뚜벅뚜벅 자기 길을 걸어간 인간의 일생이 크게 읽혔다.
조선왕릉 42기 중 북한에 두 기를 제외하고 총 마흔 기가 있다고 한다. 이 능에 대해 저자는 “거대한 이야기 봉분이다”(p.72)라고 이 책에서 말한다. 나는 이 책이 저자가 말한 능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저자가 모은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그저 암기과목에 불과했던 역사라고 생각해왔는데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삶과도 닿아있는 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살아 움직임을 저자 덕에 느껴본다. 더운 여름 밤, 기묘한 이야기들을 읽는 취미가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