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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엑시트 -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이철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5월
평점 :
오픈 엑시트, 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
내가 자주 보는 유투버 중 영국에서 바리스타를 하며 동네 주민들과 스몰토크를 찍은 영상을 올리는 여성 한국인이 있다. 거기에 달린 댓글 하나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왜 이런 삶도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나이를 먹었을까”였다. 그 유투버는 왜 한국이 아닌 영국을 택했을까? 그리고 댓글의 그 분은 왜 한국을 탈출하지 못했을까? 이 책의 서문에 답이 있었다.
<오픈 엑시트>는 우리가 탈출하고자 한다면 탈출할 수 있는 옵션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탈출하고자 하는가? 나의 경제적 이해와 정치적/종교적 자유가 타인 혹은 타인의 연합체에 의해 심각하게 침해받았다고 ‘인지perceive’하기 때문이다.”(p.8)라고 말한다. 이 ‘인지’로 인한 선택지 3가지 -탈출exit, 저항voice, 그리고 충성loyalty-으로허시먼(Hirschman1971)이라는 경제학자가 이야기한 것에서 따왔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옵션인 ‘탈출 혹은 이탈’에 대해 다룬다. “모세의 출애굽기, 19세기 대기근 중 아일랜드인들의 미국으로의 대 이주, 제 2차세계대전 중 유럽 유대인들의 미국으로의 대 이주, 2010년대 초반 내전 중 시리아인들의 서유럽으로의 대탈출”(p.10)은 탈출/이탈의 역사적인 예이며 이는 순전히 개인의 결정에 달려있다. 참고로 탈출의 반대축은 ‘저항’이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때문에 한국이탈이 쉽지 않았던 1960년대의 “대단위 공장에 모여 작업하던 수많은 전태일에게는 자신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집단적 저항’이라는 옵션 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탈출-엑시트에 앞서 ‘소셜 케이지’도 정의해야 이 책이 읽힌다. 이것은 “‘탈출을 좌절시키는 기제’다.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나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이 소셜 케이지다.(p.23)”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른다는 MZ가 아닌 나 역시 그동안 세대, 지역, 정치, 여성/남성등 철저하게 이분화된 한국은 답이 없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사회라고 생각해왔다. 그런 와중에 만났던 저자의 전작, <불평등의 세대>와<쌀, 재난, 국가>에서는 세대 간, 세대 내의 불평등 구조의 축들을 가리키고, 그 기원을 벼농사 체제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몇가지 대안을 제시했으나 우리 사회는 그런 대안을 받아들일만큼 유연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AI라는 4차산업혁명은 상황을 급변시키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 30년 후 불평등 구조를 만들어낼 주요 축으로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그리고 이민“(p.29)을 꼽는다. 이 세 가지가 만들어낼 기존의 축들과의 충돌과 새로 생성될 위기이자 기회는 한국의 미래세대에게 다양한 엑시트 옵션이라는 대안을 제안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의 마지막 한 장 반 정도는 그 대안을 받아들였을 때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한 열세가지 항목정도 되는데 그 중에 마지막을 소개한다.
”청년들은 수많은 일자리 중에서 자신들의 꿈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경험을 쌓으며, 수많은 창업 시도를 통해 혁신 경제의 새로운 주체가 될 것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아이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명문 대학과 대기업 임사증, 특정 자격증)을 따내기 위해 유년/청년기를 갈아 넣기보다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꿈꾸는 데 보낼 것이다.(p.362)
저항이 가져다 줄 시스템의 전복이 아닌 개인이 선택할 옵션으로서의 엑시트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전에는 저물어간다고 표현했을 중장년층은 이제 120세 아니, 150세 인생에서 아직 지는 해에 속하지 않는다. 그들의 인공지능 업데이트를 응원한다. 출산을 포기하고 경력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향한 선입견은 버려져야 한다. 그리고 동남아 등지에서 엑시트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우리는 더욱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는 더욱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렇게 간단하게 쓸 수 밖에 없는 나의 문장 포용력이 가련하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이 책의 주제에 닿아있는 작가의 통찰이 돋보인다. 도망이 아닌 탈출할 수 있는 옵션을 열고자 하는 이 책을 당신과 미래세대를 위해 강력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