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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혀 - 황교익의 본격 정치 시식기
황교익 지음 / 시공사 / 2025년 6월
평점 :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대통령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들이 꽤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의 말하기, 글쓰기, 독서, 리더십, 마음 등등이 그 제목이었다. 내가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혀’라는 단어 때문이다. ‘입맛’도 아니고 ‘요리’도 아니고 ‘말’도 아닌, 입이 달린 대부분의 생물이 가지고 있을 혀! 뭔가 날것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신체기관의 이름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서 저자의 이름이 보였다. 한 7-8년전까지는 미식칼럼니스트로 알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정치적 발언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 저자 황교익씨다. 그 다음에야 대통령이 좋아하는 음식이나, 맛집과 정치적 이야기가 버무려있겠거니 이 책의 내용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런 내용이라도 ‘혀’라니. 흥미로운 마음에 책을 넘겼다.
이 책은 그 분(!)이 2025년 1월 15일 새벽 공수조가 대통령 관저에 들이닥치던 날 새벽, 직접 만들었다는 샌드위치로 시작한다. 변호인단에게 주려 했다는 그 열 개의 샌드위치는 과연 누가 먹었을까, 궁금하다.
“저는 공화파이고 유물론자이며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인 정치 지형상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저의 정치적 신념은 그보다 한참 왼쪽에 있습니다. 이를 참고하시고 책을 읽으시기 바랍니다.”(p.24)라는 황교익 저자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낱낱이 밝히고 시작한다. 그래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나와 정치색이 맞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정치적 성향이 듬뿍 적셔진 글의 의도를 미리 알고 볼 수 있기에 취사선택이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흉하거나 뒤로 딴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 TTTTTT 성향의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설명에는 없는 단어인, ‘공화파’가 가장 앞서 소개되어 있는 부분은 의아했다. 하지만 곧 ‘왕당파’의 수장과 같은 위치에 있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내용을 읽다보니 왜 ‘진보’라는 글자는 없고 ‘공화파’를 가장 먼저 밝혔을지에 대한 그의 정치입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나도 정치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며 이 책을 읽어 나간다.
이 책은 두시간도 안되어 읽었다. 이승만시절의 2인자 이기붕의 냉장고에서 발견된 4월의 수박, 박정희 시절의 혼분식 운동으로 생겨난 칼국숫집과 시바스 리갈, 김영삼의 칼국수오찬, 마이클 잭슨의 비빔밥, 노무현의 라면, 오바마의 불고기 외교,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 시장에서의 유세가 어울리지 않았던 박근혜, 독도새우와 옥류관 냉면의 문재인을 읽으며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알려진 이 음식들을 통한 그들의 정치적인 행보와 국민을 향한 관점을 예리하게 읽어낸 저자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여기 이 글을 쓰면서도 책임져야 할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습니다. 자유인에게 표현의 자유란 자유인으로서 져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뜻할 뿐입니다.”(p.220) 공화파 시민을 자처하는 저자가 생각하는 자유의 의미와 전 대통령들이 국민을 바라본 시각이 읽히는 책이다. 책을 덮고 내 혀에 진하게 남는 맛과 자유의 맛에 대해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