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한겨레출판에서 조지 오웰의 삶과 사유를 담은 대표적인 작품들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도록 "나는 왜 쓰는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숨 쉬러 나가다" 3종을 리커버 세트로 출간했다. 그 중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다.
190cm이 넘는 조지 오웰이 1m도 안되는 막장을 기어가며 본 것을 썼다는 르포, <위건부두로 가는 길>은 ‘세미 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는 칭송받는다. 이 책은 총 2부로 ‘1부, 탄광 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에서는 1930년대 영국 북부에 있는 탄광지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우리는 영국에서 수백만 명이 (또 전쟁이 터지지 않는 한) 이승에서는 절대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낫다. 할 수도 있고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 하나는, 원하는 모든 실업자에게 약간의 땅과 연장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생활보호위원회의 실업수당으로 연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채소라도 기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건 가당찮은 일이다.”(pp.112-113)
세계적인 공황으로 실업자가 흔한 1930년대의 모습을 기록하며 자신이 본 바와 연결하여 최소한의 땅과 연장을 제공해줄 것을 주장하는 조지 오웰의 모습이다. 또 이어 노동자들이 묵는 열악한 하숙집의 모습, 막장안의 광부들, 광부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사는 집들, 실업에 대한 정확한 통계등에 대해 서술한다.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에서는 ”나는 상류 중산층 가운데 하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p.162)라며 자신의 출신에 대해 노동계급과 아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으면서도 구차하게 체면을 차려야 하는 계급으로 설명한다. ”아랫 것들은 냄새가 나“(p.170)라고 이야기하는 부르주아 출신의 중산층 이상의 계급들의 시각에 대해서도 직설적으로 쓰고 있다. 이런 부분은 사회주의자들에게서도 배척받는 이유로 이해된다. 제국주의 시대의 버마에서의 경찰로서의 경험이나 아시아인에 대해, 또 후반부에서는 사회주의와 파시즘에 대해 생각한 바를 거침없이 썼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은 기록 노동자로서의 면모다.
“탄광에 고용된 광부 한 사람이 매년 퍼내는 석탄의 톤수는(...) 1934년에는 280톤을 캐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는 광부의 일평생 업적과 다른 사람의 것을 비교해보변 잘 알 수 있다. 나는 만일 예순까지 산다면 서른 권의 소설을, 아니면 기껏해야 보통 크기의 책꽂이 하나를 채울 분량을 채울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평균적인 광부 한 사람은 8,400톤의 석탄을 캐낸다.(p.59)
광부들을 지켜보며 그 노동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노동하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존경이 담겨있다. 글쓰는 자신을 광부와 비교하는 부분을 읽으며 날이 서 있으면서도 뜨거웠던 이유의 비밀을 엿본 듯하다.
“하지만 메모에 불과한 이런 기록은 내 기억을 되살리는 것으로만 가치가 있다. 나야 읽어보면 내가 본 것들이 떠오르지만, 기록 자체가 북부 지역 슬럼가의 끔찍한 실태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드러내는 건 아니다. 글이란 게 그렇게 미약한 것이다.”(p.78)
이 부분을 읽으며 의외로 겸손한 오웰의 모습도 느꼈지만 오늘날 ‘조지 오웰’의 명성을 그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을 글로 쓰기 VS 있는 그대로 그리기, 중에 어떤 것이 더 힘드냐고 묻는다면 단연 전자에 손을 들겠다. 조지 오웰 자신은 글이란 게 미약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오늘날 그의 글을 다시 읽으며 글의 힘을 느껴본다.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의아하다.
“아! 위건 부두는 헐려버리고 이젠 그 자리마저 확실치가 않으니!”(p.99) 위건부두는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라고 제목을 붙였을까? 지하에서 무릎을 꿇고 석탄을 캐는 광부들에게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고 싶어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