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를 지나다 오랜만에 아이친구 엄마와 마주쳤다. 자전거 바구니에 자그마한 말티즈 한 마리가 앉아있다. 메리라는 하트 목걸이를 달았다. ‘개를 키우고 싶다’며 조르던 아이친구 모습이 떠오른다. “아, 결국 키우시는 군요, 친구 소원 풀었겠네요.” 이야기하자 “맞아요, 엄청 좋아해요” 대답한다. 허리가 말썽인 분이라 가끔 표정이 좋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오늘은 환하게 웃으신다. 아마도 아이가 하교할 때 메리를 보고싶다 했나보다. 바로 학원을 가야 할 텐데 그 짧은 시간이라도 메리를 쓰다듬고 싶은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으셨겠지? 혼자 유추해본다. 하지만 곧 먹이고 씻기고 뒤처리를 해야 하는 일들이 떠오르며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이 책에도 쓰여있듯, 돌봄노동이란 “다른 구성원의 삶을 전적으로 바치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소외 현상이 일어난다. 보호자는 고립감과 억울함, 인내심과 같이 아득함 같은 감정을 경험한다.”(p.188) 나 역시 이런 감정의 경력자로 아이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나 단호하게 거절을 한 터이다. 저자는 나보다 더 심각하다. 어릴 때 동물을 두려워했던 어머니 밑에서 자라 저자 역시 동물과의 접촉을 피해 살아왔고 그동안 집에 들였던 반려식물 킬러 이력(아 저도 그렇습니다)으로 “나도 남도 괴로워질 가능성이 있는 일에는 발가락조차 담그고 싶지 않았다”(p.13)고 고백한다. 이런 저자가 2022년 12월 3개월 남짓으로 추산되는 어린 개를 입양하게 된다.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어린 개와 살게 된 초보 반려인의 좌충우돌 모험담”에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들’ 혹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싶어한 저자의 이야기들이다. 총 3장 중, 1장에서는 어린 개가 그의 가족과 만나게 되는 상황과 가족과 함께하는 공간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루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이야기도 있다. 2장이 되어서야 겨우 루돌이의 배를 어루만지는 저자를 보며 주인공 루돌이도 루돌이지만 정이현 작가님의 고군분투도 존경스러웠다. 산책을 나가서 중형견이라는 이유로 겪는 수모(!!)도 그렇지만 마르티즈를 키우는 아저씨 부분을 읽으면서는 저자가 책에 써놓지 못한 욕을 내 입으로 해주었다. 나 역시 왕년에 유모차를 끌고 산책로에 나섰다가 자전거 금지라고 바닥에 써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주오는 자전거 아저씨에게 욕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무방비한 상태에서 혐오를 띈 공격을 받은 충격에 대한 이 글을 읽으며 내가 받은 공격과 나 또한 무의식중에 했을 수도 있는 모습의 경우를 떠올려보았다. 처음에는 제목을 여러번 읽었다. ‘어린 개가 왔다’. 어린 개는 보통 강아지라고 하지 않나? 왜 굳이 강아지라고 하지 않고 어린 개라고 이름을 붙인걸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미에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루돌이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을 읽은 독자의 ‘어린 개’를 만난 순간을 떠올리기를,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읽었다. 또 나만의 ‘어린 개’에 대한 단상도 해본다. 강아지처럼 귀여운 소형견만을 소유하려는 견주들에게 전하는 중, 대형 견의 ‘우리 애가 몸은 커도 아직 어린 애랍니다’하는 주인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도 있는 제목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라이프에 맞춰 만들어진 이 도시가 개들이 살기 불편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길들여졌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함께 동거동락해야 하는 ‘어린 개’의 마음을 한번쯤은 들여다봐야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루돌이를 만나기 전에 나를 둘러싼 세계에는 인간만이 존재했다. 편협한 줄도 몰랐다. 이제야 지구라는 장소를 공유하는 다른 종들의 삶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쏠리기 시작했다. 그 관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토록 지극한 개의 사랑을 받는 것에 조금 더 당당해지도록.”(p.226)p.s 내가 사랑을 해주는 쪽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는다는 이 뻔한 간증에도 불구하고 정소현 작가가 썼기에 다르다. 개와 인간, 더 이상 쓸 말이 없을 것 같은 주제에서도 빛나는 작가의 관찰력이 함께 읽힌다. 유기견 임보사이트를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사람에게는 <어린 개 위스퍼>가 될 수도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