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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다음 - 어떻게 떠나고 기억될 것인가? 장례 노동 현장에서 쓴 죽음 르포르타주
희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몇 년 전, 이 시대의 스승이라 불리우는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 책을 읽으며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각인되었다. 분명 삶을 진지하고 열심히 살 주문임에는 명백했으나 이 메시지를 머리에 새긴 채 즐겁게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책을 잘 못 읽은 것일까,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 가벼운 유전자로 태어나 저 다섯글자로는 잡을 수 없는 걸까, 고민하던 차에 이 책 <죽은 다음>을 읽게 되었다.
단숨에 읽은 후 느낀 것은, 죽음에 대해 익숙해질 수는 없겠지만 거부감이 없어질 때까지, 죽음에 대한 생각을 또는 이야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식장에서 A, B, C 패키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일과 다를바 없는 장례식에 묻힐 것이다. 나는 인생에 단 한번뿐인 세레모니와도 같은 결혼식이, 그것도 큰 돈을 써야 하는 결혼이란 제도가 한국에서는 패키지 선택 하나로 내가 낸 그 돈이 필요한 노동자들의 노동 세팅에 내 자신을 우겨넣어 공장에서 찍어내듯 남과 똑같은 결혼을 맞이한다는 것이 참 부조리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나의 결혼식을 한참 지나 남의 결혼식을 비일비재하게 다니면서야 겨우 깨닫게 되었는데 죽음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다. 한국 스타일의 빨리빨리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 상주는 상조회사 직원과 몇 안되는 패키지를 선택하고 장례비용을 지불한다면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상대하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주체적인 죽음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 죽음은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장례란 있을 수 없다고 장례 산업 노동자인 저자는 전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죽을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죽은 다음, (아마도) 내 자식이 치르게 될 장례식을 강제로(!) 미리보기하게 만든다. 언제까지 죽음이라는 실체가 잡히지 않는 소름의 서막만을 맛보고 회피할 것인가,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죽은 다음 있을 장례의 모든 일, 끝까지 달린다. 장례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담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장 현생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에 새로운 질서가 필요함을,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선택이 해왔던 대로 수동적이길 바라는지, 변화에 동참하길 바라는지를. 메멘토 모리를 가슴에 담고 사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그 글자에 기름을 부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