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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모든 공이 좋아! ㅣ 도넛문고 12
이민항 지음 / 다른 / 2025년 4월
평점 :
겨레중학교 야구부의 여자선수 오희수와 이태진은 영혼의 배터리(포수와 투수)라 불린다. 우리나라 최초, 여자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은 희수는 속구에 자신있기에 130킬로미터의 강속구의 공 던지기를 꿈꾸는 투수다. 롤모델인 진종현 선수와 같은 운동 루틴을 저녁마다 반복하는 열정 투수다. 도지사배 전국 야구대회 전날, 포수 태진이 희수의 루틴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희수는 뼈있는 치킨을 먹어야 하는 징크스가 있지만 아빠가 순살을 시켰고 마법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야 하는데 엄마는 걸레로 만들어서인지 대회 당일, 첫 공을 던지는데 어깨에서 뚝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1년을 재활하는 사이 겨레중 야구부는 없어지고 태진은 야구를 그만둔다. 재활 후 돌아온 희수에게 이전 감독님은 중왕중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강속구를 던지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영혼의 친구 태진과 관계도 끊어지고 자신있던 속구는커녕 제구력까지 다 잃은 희수와 그만두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둬야 되지 않겠냐는 엄마의 말에 어쩔수없이 중3 2학기 대회에 참가하는 대윤이 보조 배터리로 함께 하는 내용이다.
이 둘은 정말 다르다. 희수는 대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 대윤은 “어차피 희수가 원하는 건 자신만의 방법대로 열심히 하는 거니까.”(p.58)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희수는 열정이 있는 만큼 고집도 세다. 그 고집이 늘 좋게 작용하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말도 안되는 루틴과 징크스는 철저히 지키려고 주변 사람을 닦달하면서도 희수를 가장 잘아는 포수였던 태진과 대윤의 조언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 포수들은 잘하고 싶은 희수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꺾지 않으려 한 것일테지만만 이런 독불장군 같은 모습은 결국 어깨 부상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한편 대윤은 학교에서 선수생활은 하면서 피아노로 전공을 바꾸기 위해 레슨을 받는 중이다. 엄마가 들려주는 쇼팽의 곡 중 연습곡 10-3번 <이별의 노래>를 들으며 건반사이에 채워지지 않는 곳에 조국, 폴란드를 향한 그리움과 애달픔, 외로움 등등이 스며있음을 느끼며 희수의 공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챈다. “꾸물대는 공기를 자르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채워 넣으면, 공은 다채로움 안에서 흔들릴 것이다. 공기를 주무르는 그런 공을 던진다면 어떨까?”(p.82) 그래서 늘 강속구만 던지려는 희수에게 너클볼을 연습하자고 제안한다. 너클볼은 나비처럼 나풀나풀, 한들한들 포수를 믿고 던지는 공이다. 이 공을 연습하는 둘에 대해 작가는 “글러브를 잠자리채처럼 쥐고 두 사람은 계속 나비를 쫓았다.”(p.93) 라고 묘사한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좋았다. 이들이 즐기고 사랑하는 야구가 마치 나비를 쫓는 순수한 마음과 연결되어 보여서. 그렇게 메인 배터리는 아니지만 보조 배터리로서 이 둘은 합을 맞춰나간다.
“‘보조’라는 게 처음 들었을 땐 ‘메인’이 아닌 ‘서브’란 뜻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서로 모자란 것을 보태어 돕는다는 뜻이 있대.”(pp.131-132) 야구는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배터리, 그리고 야구팀 전원과 함께 하는 종목임을 희수는 이 말을 대윤이로부터 들으며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보조더라도 언젠가 메인에 설 희수가 보인다.
모두가 1등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는 항상 승자가 존재한다. 이 책에서 희수와 태진은 그런 완벽한 진종현 선수를 롤 모델로 야구를 해왔다. 하지만 승자의 자리에 왕처럼 앉아있던 진종현 선수마저 음주운전으로 선수자격을 박탈받는다. 1등 실력을 가졌더라도 선수의 기본 인성이 뒷받침 되어있지 않다면 작은 실수로도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인물이다. 대윤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유명 피아니스트였으나 음주운전 차에 치여 하반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겪고 지금은 동네 피아노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야구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멋진 엄마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랐기에 6년동안 전념해온 야구를 접고 피아노를 시작할 수 있는 대윤이다. 그리고 열심히 해온 모습 그대로 피아노 역시 몰입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두 중학생을 보며 항상 이기기만 하는 사람은 없다고. 다치기도 하고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가 올것이라고. 하지만 너무 늦게 발견한 것이 아니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너희는 아직 중학생이고 미래는 많이 남았다고, 그래서 <너의 모든 공이 좋아!>라고 외쳐도 되는 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