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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평점 :
좁은 골목 사이에 숨어 있는 이 호랑골동품점을 찾아올 방문객이 누구일까 궁금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책들 사이에 끼어있게 될 이 책을 집게 될 독자를 환영한다. 참 재미있는 책을 고르셨다. 일단 축하드린다.
작가의 성이 ‘범’씨라 ‘호랑’골동품점일까 궁금해하며, 또 한편으로는 표지 그림에 그려진 벽지를 보고 어릴 적 방을 떠올리며(정말 딱 저 모양이었는데!!) 책을 펼쳤다. 사실 작년에 <오후에 출근합니다>라는 책에서 ‘마법소녀 계약주의보’ 라는 작가의 판타지 소설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더 반갑게 책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 소설의 세계관은 이렇다. 산의 주인인 백호가 눈병에 걸린다. 백호의 신음소리에 산에 살던 짐승들은 산을 떠나 인간을 해친다. 그러던 중 죽으려고 작정하던 한 청년이 눈병을 치료해주고, 백호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속눈썹 하나를 뽑아 청년의 눈썹에 심어주며
“너는 앞으로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는, 사람 아닌 것들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영생을 살며 나의 눈을 고쳤듯이 사람들을 구하라.”(p.9) 라며 능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이 청년은 영생을 살고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백호는 다시 제안한다.
“힘을 넘기기를 원하면 안개 속으로 들어가라. 그 속에서 헤매는 아이를 구하면, 그 아이가 후계자가 될 것이다.”(p.10)라고 대답해준다.
이후 그는 원한이 담겨 문제를 일으키는 물건들을 기운 좋은 터에 두어 정화시켜 문제를 해결했다.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은 수상쩍은 물건들을 가지고 그에게 몰려왔다. 사람들은 그를 ‘호미’라 불렀다. 호미는 정화해야 할 물건들은 가게에 두어 전시하고 그렇지 않은 물건들은 팔았다. 그렇게 호미의 가게는 ‘호랑골동품점’이 된다. 이런 세계관을 가지고 이 책을 들여다 보면 된다. 차례의 여섯가지 골동품 이름은 이 소설의 각각의 여섯가지 이야기가 된다.
여섯가지 에피소드마다 각종 사회적인 문제 –노동인권, 가정폭력, 왕따문제, 외모지상주의 등을 다뤘음에도 이렇게 재미있다니. 이야기마다 각각의 매력이 있어 뭘 소개해야 한참 고민한다.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편은 콜센터 노동자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김규리가 호랑골동품점을 지나다가 홀린 듯이 들어가 “나를 가져. 나를 가져가” 하는 성냥갑의 목소리를 듣고 도둑질을 한다. 이후 무명천으로 턱을 감싼 여자 귀신들을 매일 같이 마주치며 시달린다. 어린 시절 다 한번 읽어봤을 ‘성냥팔이 소녀’에서 그 소녀가 추울 때 성냥을 그어 잠깐 동안의 행복과 따뜻함을 느끼는 그 부분이 이 소설에서는 콜센터 흡연실에서 급사한 이미선 아줌마의 환영과 같은 기이한 호러의 문법으로 사용된다. 이 성냥이라는 상징은 콜센터에서 화장실 마저 순번으로 돌고 휴가나 반차를 쉽게 쓰지 못해 병원에 가기도 힘든 노동자들을 대변한다. “이미선은 타 죽었다. 저 성냥처럼, 자기 자신을 끝까지 태우다가 소진되어 죽었다.”(p.37) 알고 보니 이 성냥갑은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회사에서 만들던 제품이었다. 이 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들은 인 노출로 인해 턱이 녹아내려 암이 되는 인중독성 괴사에 시달리고 있었다. 죽어가던 여자아이들의 원념이 담긴 이 성냥갑은 호랑골동품점에서 정화 중이었던 물건이었다. 그렇게 성냥을 만들던 시대의 사회적 약자와 오늘날의 사회 속 약자들이라는 접점은 성냥이 부딪히듯 불꽃튀는 이야기가 되는 매력, 아니 마력이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운수좋은 날’을 계속 떠올리며 읽게 되는 구성이 좋았다. 세 번째 이야기는 벽괘형 공중전화기가 마치 시그널에서 무전기같은 매개체가 되어 가슴따뜻한 이야기로 변신한다. 네 번째는 자신을 호구로 아는 두 남자아이들에게 학창시절부터 당해온, 심리적으로 구덩이에 갇힌 심길용이라는 대학생이 진짜 구덩이에 파묻히게 된 토끼 롭을 구하면서 구원을 받는 이야기이다. 다섯 번째부터는 호랑골동품점과 깊은 인연을 쌓아가는 소하연이라는 아이를 눈여겨 보며 읽었다.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지금 호랑점을 운영하는 이름부터 수수께끼같은 이유요와 사부의 관계, 그리고 소하연이라는 아이가 미래의 호미가 될 재질인데 어떻게 안개 속에서 데리고 왔을까 각종 궁금증이 증폭하던 가운데 끝나버렸다. 처음에 이 책을 잡을 때보다 더 궁금해져버린 느낌이랄까. 다행인 건 후일담에서 ‘호랑골동품점 영업 시작 [열림]’이라니 앞으로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겠다.
이 거대한 도시 속에서 남의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한 골동품점이 있다. 오늘날의 사회적 약자들도 그렇다. 보려고 하는 이들은 턱없이 적고, 보일 법도 한데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는, 똑같은 크기의 파이를 들고 있는 나와 같은 이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간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각박함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 재미있는 책을 읽으며 이런 씁쓸함이 남았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달라진 나는 이미선 아줌마가 체조할 때 옆에서 같이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p.s 아이가 전천당을 읽을 때 부모는 이 책을 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가독성이 좋아 청소년이 읽어도 좋다! 사회적인 이슈가 많아 토론용으로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