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p.23 - 피아니스트 조가람의 클래식 에세이
조가람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4월
평점 :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에 대해 ‘나무막대기를 두드리는 시간’이라고 표현하는 겸손한 저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조가람씨의 에세이 <Op.23>을 소개한다. 나는 이 분을 유투브 채널 또모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 썸네일에 ‘연습실에서 10년동안 은둔하며 어려운 곡들을 전부 마스터해버린 레전드’라고 써 있어 호기심에 클릭했던 기억이 있다. 그 영상에서 또모운영자들이 어렵다고 소문난 곡들을 계속해서 요청하다가 극난이도의 ‘스트라빈스키의 불새’까지 요청했는데 “오른손으로 동그라미 그리면서 왼손으로 세모, 그리고 왼발로 하트 그리며 오른발로 별을 그려 봤느냐, 그런 느낌이 드는 악보다”라고 설명하시더니 막상 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를 완성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피아니스트로서 각종 콩쿠르 수상과 우수한 졸업점수, 수많은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그리고 교수진으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저자는 또한 칼럼니스트로서 클래식 에세이를 연재 중이다. 그래서 예술가와 관객을 이어주는 <Op.23>이라는 책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총 세 파트로 파트 1에서는 여러 피아니스트들을 소개한다. 가장 처음으로 이보 포고렐리치를 소개하며 1980년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익숙한 패턴의 전통을 무너뜨리고 ‘악보 해석의 왜곡’(p.16)과 과감한 질감으로 쇼팽을 연주한 그에 대해 심사위원들 중 반은 찬사하고 반은 반대하여 결국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이치 그라모폰은 이 대회에서 1위 수상자가 아닌 포고렐리치와 계약을 맺는다. 이후 그의 혁명적인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들로부터
“음악이 가져다준 부와 명예를 세상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쏟는다.”(p.14)
재능은 있으나 재정문제로 곤란한 음악도들에게는 장학금을, 발칸 전쟁 당시의 병원 재건을 위해 쓴다. 뿐만 아니라 콘서트를 열어 아픈 아이들의 의료비용을 조달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가 있었음을 저자는 소개한다.
“세월호가 도착해야 했던 제주항으로 달려간 그는 리스트의 ‘사랑과 죽음’과 베토벤의 ‘비창’을 연주한다. 달리할 바를 몰라,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 피아노를 연주했다는 그.”(p.65)
백건우 피아니스트이다. 그 뿐 아니라 파트 2에서는 예술로 총검을 잡으라는 아버지의 부탁으로 폴란드 망명자 생활을 하며 곡을 썼던 쇼팽의 삶을 묘사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대에서 보여주는 예술의 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저자가 느껴졌다. 이후 라흐마니노프, 리스트, 라벨, 조지 거슈윈 등 다양한 음악가들의 각 곡과 작곡가에 얽힌 당시의 시대와 개인적 서사 그리고 감정들에 대한 저자만의 음악적 경험이 2부에 함께 한다.
파트 3에는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저자만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겼다. 어려서부터 특별한 레슨 없이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긴 시간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모든 심사위원의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평균치에 합당한 연주를 해야 하는 콩쿠르와의 타협없이 좁은 길을 선택한 저자는 비록 2와 3이라는 콩쿠르의 성적으로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긴 순례길처럼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피아니스트 조가람씨를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또 피아노를 치는 아티스트 내면의 목소리를 이렇게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또 어디 있을까. 미래의 음악가들을 꿈꾸는 아이들이라면 선배의 비밀일기장을 읽는 느낌으로 한 층 더 레벨 업할 수 있는 예술가적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관객으로서도 그렇다. 일반인이 표현하기 힘든 예술가의 고뇌를 공감할 수 있도록 언어화한 이 에세이를 읽는 독자에게는 또 다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만의 고유한 음악적 감성을 따라 향유할 수 있는 찬스이면서 음악을 추앙하는 각각의 예술가들을 책으로 읽는 것같은 경험이기도 해서 이 한 권으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추천받은 느낌이라 나는 다 읽고나서도 음악가들과 곡을 리스트업하느라 마음이 바빴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흡수해서 피아노로 그 아픔들을 예술로 바꾸려는 삶을 살아가는 음악가들을 응원한다. 그렇게 삶이 음악이 되고, 음악이 생이 되는 순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다양한 예술가들을 향한 여행길을 소개하는 책이었다. 별점 다섯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