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보의 푸른 책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7
마논 스테판 로스 지음, 강나은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평점 :
<네보의 푸른 책>은 영국도서관협회 사서들이 선정하는, 2023년 카네기메달을 받은 작품이다. 이 메달은 1997년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제치고 팀 보울러의 <리버 보이>가 받은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인기와 무관하게, 아이들에게 좋은 작품인가만을 순수하게 고려해서 선정한다.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핵폭발 이후의 재난관련 청소년 작품이 또 있었던가?를 한참 헤아려봤다. 나의 지평으로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런 장르를 선택했기에 이 작품이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파괴된 세상, 이전 시대에서 영국 웨일즈의 작은 마을이었던 네보에 엄마 로웨나와 아들 딜런, 그리고 딸 모나가 남았다. 로웨나는 덜란에게 책을 쓸 것을 권하며 이 <네보의 푸른 책>을 쥐어준다.
“나는 종말의 기록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p.24)(...) 그래서 엄마는 ‘이전 시대’와 종말에 관해서 쓰고, 나는 ‘지금’의 이야기를,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쓰기로 했다.(p.25)
그래서 이 소설은 ‘덜란’과 ‘로웨나’ 챕터 두 개가 오고가며 그들이 그 책에 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웨나는 주로 이전 시대와 지금의 이야기를 비교한 삶에 대해 쓴다. 그녀는 종말 이전에 “나를 보지 못하는 화면들에 내 저녁을 바쳤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며 내 삶을 낭비했다. 삶이 따분했다.”(p.81)라고 고백하기도 하고,
“한때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갖는 일은 순교적인 일로 여겨졌다. 자신의 이기심은 밀어두고 자식을 위해 살기로 한 일이라는 듯 말이다. 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는 그저 자기 삶에 목적을 두고 싶어서였다. 삶에서 좋은 역할, 가치있는 역할을 보장받고 싶어서. 온전히 자신에게만 의존하는 존재를 탄생시키는 것이 종말 이전에는 좋은 일이었다. 지금, 그것은 잔혹한 일이다.”
이렇게 아이를 가진다는 의미에 대해 이전 시대에 대해 평가하기도 한다. ‘지금’ 그녀는 유일한 어른이며 엄마로서 “이제 아이를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 이기적인 일이다.”(p.80)라며 아이들을 향한 어떤 중압감, 책임감, 부채의식을 가진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덜란의 챕터를 보면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일곱 살에 엄마와 함께 감자 수확에 성공을 한 후, 온실을 짓는 일에 몰두 한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더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는 기분을 느낀다. 단 하나도 아쉬운 것이 없다. 이것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기에, 이곳에 꼭 맞는다.”(p.122)라고 성취에 대한 고백을 하는 부분이 있다. 로웨나와 덜란이 핵폭발 이후, 삶에 임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며 나는 어느쪽일까, 상상하게 된다.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핵폭발 이후, 방사능에 노출되어서인지 괴물같은 짐승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덜란은 우연히 얼굴이 두 개 달린 토끼를 발견하고 푸이흐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헛간에 가둬두었다. 동생 모나도 푸이흐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함께 즐거워한다. 그런데 어느날 모나가 실수로 헛간문을 열어 도망간 것으로 덜란은 기록한다. 로웨나 챕터를 보면 그 토끼를 본 로웨나는 보자마자 쇠스랑으로 토끼를 갈라버리고 정원에 묻어버린다. 그러면서 “작은 존재일 뿐이지만 내 아이들이 그 끔찍한 생명체를 보지 않았으면 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커다란 일들로부터는 보호할 수 없어도, 작은 일들은 내가 막아줄 수 있다.”(p.113)라고 푸른 책에 기록해둔다. 푸이흐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도 매우 인상적이다. 지금, 핵폭발 이전 시대의 현실에서 왜 우리는 얼굴 두 개의 토끼는 죽임을 당해야 할까,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핵폭발 이후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어른인 로웨나보다, 아이인 덜란이 훨씬 적응을 잘한다. 끔찍한 재난 이후의 삶이 계속되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덜란을 응원하게 된다. 오늘날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더 많은 핵의 위협, 기후위기로 시한부가 된 세상에서 살게 될 아이들의 삶이 (이렇게까지 끔찍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지속될 수 있다는 희망을 덜란을 통해 보았다.
어른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아이들은 강하다. 그걸 이 소설이 보여준다. 이 가능성은 아이들에게 불안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이 이룬 성취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