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마인 워프 시리즈 8
배리 B. 롱이어 지음, 박상준 옮김 / 허블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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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장르에 있어서 SF인가 육아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전격 SF 외계인 육아서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내가 본 SF소설 중 가장 가독성이 좋았다. 이 책 두 시간이면 뚝딱이다. 심지어 재밌다. 하지만 드랙 종족을 통해 인간인 우리에게 묻는 질문의 울림은 오래간다.

인간이 우주에 진출한지 200년, 호전적인 종족 답게 이 소설에서는 드랙 종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지구우주군 조종사인 윌리스 데이비지는 드라크 전투기와 싸우다가 파이린 4호 행성에 불시착한다. 그런데 데이비지와 마찬가지로 격추당한 드라크 조종사인 제리도 함께다. 처음 장면은 맨몸으로 둘이 싸우면서 시작한다. 손가락 관절이 세 개뿐이고, 노란 눈에 코가 없는 드랙인의 모습은 추해보인다. 하지만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인간, 데이비지는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다. 싸울 이유는 더 이상 없었던 것이다. 둘은 함께 생존에 힘쓰기 시작한다.
드라크는 손가락이 세 개이고 인간은 다섯 개라는 점이 인상깊었다. 나중에 제리의 아이인 자미스를 데이비지가 키울 때, 그는 그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나중에 데이비지가 수용소에서 자미스를 찾을 때, 약물에 취한 자미스가 알아본 것은 손가락이 다섯 개인 데이비지였다. 전에 제리는 데이비지에게 ”너는 내가 뭐라고 하면 항상 종족 문제로 확대시키는 구나. 나는 너에 대해서 얘기한 거지, 지구인 종족에 대해서 말 한게 아니야.“(p.96)라고 말했다. 인간인 데이비지는 손가락이 세 개라서, 외형이 달라서, 드라크를 적으로 인식한 반면, 자미스는 손가락이 다섯 개인 데이비지를 기억하고 알아본 것으로 보인다.
또, 데이비지가 적이지만 제리와는 생존할 수 있었지만, 제리가 죽으며 낳은 자미스가 말이 통하지 않는 신생아일 때는 돌로 내려치려 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제리와 함께 했던 시간으로 그 위기를 버텨내면서 데이비지는 이전에는 조종사이자 군인이었던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된다. (이 뒷부분은 스포) 드라크인들의 계보에 기록되지 못하지만 데이비지는 제리와 자미스와 함께 했던 그 행성에서 꾸준히 그들의 아이를 맡아 기른다. 그런 데이비지를 보며 아무리 혐오스러운 적이더라도 바로 옆에서 탄생과 죽음을 목격한 우리는 그들을 적으로 대할 수 없는 인간성이 있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혼자 있을 때는 그저 포유류와 다를바 없는 동물이겠지만, 둘 이상일 때, 함께 하는 존재일 때 나타나는 인간성을 이 책에서 보았다.
그리고 드라크가 믿는 “탈만은 모든 진리를 포함하지는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지금 세대와 모든 미래 세대한테는 더 새롭고 훌륭한 진리가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탈만이 이 진리들에 열려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탈만은 과거의 신화가 될 따름이다. 지금 세대와 모든 미래 세대여, 그때 너희가 진리를 지닌다면 유헤가 마베다 앞에서 그랬듯 탈만 코바흐 앞에서 말하시오.”(p.129) 이 탈만도 매력적이다. 진리가 없다는 진리를 알려주는 경전이다. 이 드라크가 인간보다 수명이 짧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런 설정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볼만하다.

1942년생인 배리 B. 롱이어(Barry B. Longyear)가 30대 후반에 쓴 이 책은 휴고(중편)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존 W. 캠벨 신인작가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소설로, 이 기록은 단 한 번 무려 38년이 지나서야 경신될 정도로 희소한 가치를 지닌다. “이야기가 너무나 훌륭해서 ‘휴고상’ 느낌이 가장 충만하다”라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평처럼 <에너미 마인(Enemy Mine)>은 작품성으로 신뢰받았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 출간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곧장 볼프강 페테르젠 감독에 의해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그 영화는 소련에서 상영된 최초의 서구권 SF영화라고 기록된다. 2024년에는 <12 몽키즈>와 <스타트렉: 피카드> 등의 TV 시리즈를 집필한 테리 마탈라스가 각색을 맡아 리메이크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올해 기대되는 <미키7>에 이어 조만간 <에너미 마인>도 기대해볼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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