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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이 책에는 “한국 교육 문제에 대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주의를 환기할 수 있는”(p.4) 소설가 14인의 시선이 담겼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전, 우리사회의 병폐를 바로잡기에 한국소설은 항상 뒷북을 친다고 생각했다. 빨리 쓰이는 소설은 시의적인 사회성을 담아 한 때의 유행가처럼 휘발되고, 반대로 오래 걸려 쓰인 소설은 이미 세상이 다음 단계에 진입했는데 뒷북을 치며 쉬어터진 김치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장강명 작가의 “살아있는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 책 속 '기획의 말'을 읽으며 그런 나를 반성했다. (노벨상을 받은 한강작가를 통해 그동안 책에서만 읽어봤던 예술의 힘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어서일까?) “나는 저 혼란스러운 질문들을 마주하는 것,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당대를 다루는 작가의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살아 있는 작가에게는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그의 시대가 있고,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그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겪게 된다 바로 그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쓸 때 그의 글에서 단순한 생생함 이상의 어떤 불꽃이 튀는 것 같다.”(p.8)는 장강명 작가님의 문장을 읽으며 ‘살아있는 소설가’를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을 조망하는 시선을 함께 하는 것, “저희가 본 것을 같이 봐주시고, 함께 괴로워해주십시오.”(p.9) 이 것이 ‘살아있는 독자’의 일이란 생각을 해본다.
사실 한국 교육에 대해서 그간 아이돌들이 힘써주었다. 그 중 ‘교실 이데아’가 상징적이지만 난 개인적으로 ‘시대유감’에 더 무게를 실어주고 싶다.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라고 노래하다가 심의에 걸렸던 1996년도의 서태지 노래를 듣고 자란 어른들. 그들이 자식 세대에게 보여주는 여전한 시대유감이 이 열 네 편의 소설에 담겼다.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며 열광하던 그들은 이 소설 속에서 부모가 되어 자식교육농사라는 오징어 게임에 참가했다.(나 역시 어제 애 레테를 보고 온 사람으로 다르지 않다)
"너 과학 약하잖아. 정작 시험에 나오는 중요한 건 제대로 외우지도 못하면서 자작나무니, 동박새니, 물오리니, 왜 그런 쓸데 없는 거나 알고 있는 거니? 과외 선생이 그딴 거나 가르치디?(p.164)"
"가난하고 게으르고 약한 것들과는 어울리지 말라 하셨죠.(p.164)"
<지옥의 문> 한 구절이다.
수능시험 하나를 위해 달려가는 오늘날의 교육 제도 안의 아이들이 너무도 불행해 보인다. 나 역시 이 터널을 지나왔기에 그 시간이 얼마나 개미지옥인지 잘 알지만 그 시간을 버티고 최종 수능시험 고득점자만이 갈 수 있는, 저 높은 곳으로 내 자식을 보내기 위한, 이 넌제로썸 게임에 한국에 거주하는 그 누가 과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지옥에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제 자식을 밀어넣는 부모를 누가 욕할 수 있을까?
지난 주에 수능시험이 끝났다. 내년도, 그리고 2025년 개정된다고는 하지만 내후년에도 매년 계속될 수능이라는 목줄은 어떻게 해야 끊어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