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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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미술관련 책들 중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가 남다르게 좋았다. 일반적인 미술관련 책들은, 유난한 화가의 일생이나 미술 사조, 가치(얼마짜린지), 누가 소유하고 있는지를 주로 다룬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저자가 형의 죽음을 기점으로 10년동안 메트로폴리탄에 머문다. 나는 그가 형에 대한 애도를 그 메트로폴리탄에 전시되어 있는 수많은 유물들과 함께 그 곳에 묻은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애도를 ‘온전히’ 마친 그는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인생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든다. 그래서 당분간 이 책을 이길 책은 없겠지 싶었던 차에 <언니네 미술관>을 만났다. 게다가 나혼자만의 인연도 있는 저자다. 코로나 초기, 당시 브런치로 데뷔하는 작가들이 많았는데 그 중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를 출간한 이진민 저자의 북토크를 줌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사실 그 때 줌도 익숙하지 않고 또 여기서 현재동아리 박 땡땡 회장님을 처음 만났다, 나만 기억하려나) 그 당시 저자님은 독일에서 육아와 철학 공부를 동시에 하고 계셨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언니네 미술관>을 만났다. 순전히 제목만으로 고른 픽인데 뭔가 이런 우연한 조우에 대해 혼자 즐거워하고 있는 중이다. 나 이 언니 알아, 요런 느낌으로 ㅎㅎ

<언니네 미술관>이라는 책 제목을 읽으며 뭔가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밴드 생각이 나기도 했다. 저자인 이 언니가 보여주고 싶은 그림들을 모은 책인가 싶기도 했는데 역시 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을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동료 여성들, 즉 세상의 딸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을 담은 책입니다.(...) 원래 이 책의 가제는 ‘세상의 딸들을 위한 미술관’이었습니다.(p.5)라고 한다. ‘저자의 말’에서 이 언니는 “사소함, 익숙함, 하찮음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가장 먼저 쓴 부분입니다.(p.4)”라며 이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에 대해 언급한다. “이 세상의 차갑고 딱딱하고 갈라진 것들을 조금씩 적시는 글을 쓰고 싶다고.(p.5)” 의미라고 한다. 이 언니가 각 장마다 제시하는 키워드들 – 1장의 근육, 마녀, 거울 2장의 슬픔, 서투름, 사소함, 익숙함, 하찮음 3장의 직선과 곡선, 앞과 뒤, 너와 나-로 이 책은 채워져있다. 이 키워드에 대한 언니의 생각들을 먼저 독자에게 던져준다. 그리고 그녀가 모은 그림들을 같이 보며 이 언니가 느낀 감각과 감성에 빠져든다. 어라? 난 어느새 헤엄치고 있다. 그런데 이 물은 우유다. 이 언니가 우유 따르는 여인이었네. 나는 이 우유수영장에서 좀 더 있고 싶다. 이 언니의 우유 항아리가 마치 지금도 바닷속에서 소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멧돌이었으면 좋겠다, 싶다. 이 우유같은 문장들 중 ‘슬픔’에 대한 부분 공유해본다.

“기쁨은 딱히 묻지 않아도 좋은 감정이다. 섬세히 묻지 않고도 그 사람이 발산하는 기쁨의 파장 안으로 뛰어들 수 있다. 하지만 슬픔은 섬세히 물어도 공명이 어려운 감정이다. 각자가 가진 슬픔의 회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쁨에는 교집합이 많지만, 우리가 슬픔을 느끼는 지점과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각자의 고유한 식을 가진 함수 같은 것이다. 그저 물을 수밖에 없다. 물어도 닿지 않을 확률은 높지만 혼자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닿을 것이기에.(p.145)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글이다. 나 이 언니랑 미술관 같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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