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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
조형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어느 순간 소설보다는 논픽션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확실히 비문학을 읽으며 사회를 보는 눈이 좀 더 다양해진다. 이분법적인 사고로 읽을 수 없어 좋고, 해피엔딩이나 권선징악이 성립되지 않으며 눈을 커다랗게 뜨고 직면할 것을 요구받고 “그래서 너는?”이라는 열린 결말로 마친다. 이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이 딱 그런 책이다. 특히 매 장의 마지막 문단은 나를 18번(총 18장이다!!) 뼈를 때리고 심장을 조여댔다.
이 책은 표지부터 눈길을 끈다. 이미 흑백의 물살 위에 핑크빛으로 ‘역사에 연루된 나와 당신의 이야기’라는 글씨 다리가 세로축으로 그어져 있다. ‘연루’ - 저자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메인 키워드다. 그는 자신과 우리가 역사에 연루되길 바란다. 나는 저자의, 메인 스트림이 아닌, 잘 몰랐던 열 여덟가지의 이야기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동안 줄곧 들었던 건, 우리의 비참했던 역사를 잊지 말자, 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같은 강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연루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을 이 책을 덮으며 깨닫는다. 그러고 나니 이제 표지가 이해된다. 역사에 연루된다는 것은 저 파도처럼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물살 위로 흔들거리는 저 좁은 다리를 건너는 일이다.
우리에게 ‘역사’ 하면 옆 나라들에게 당했던 이야기들만이 분노로 남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역사의 뒤안길에 우리가 회피했던 열여덟 가지의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책제목과 관련된 콰이강 다리로 예를 들자면, 2차세계대전, 일본군인들이 사로잡은 영국인포로들의 노동으로 건설되었다는 그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필름 속에는 담겨 있지 않은 내용 – 그 포로들을 감시한 이들은 주로 한국인-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들은 포로감시원이라는 직업으로 일본인 밑에서 일했다. 그 한국인 포로감시원들은 일본인들보다 더 잔인하게 포로들을 다뤘다고 살아남은 영국포로들은 기록했다. 비록 그 한국인들도 일본 상사들에게 많이 맞았다고는 하지만, 그 악행이 심해 전쟁 후의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 받은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야성의 부름>을 쓴 잭 런던의 이야기를 다룬 파트가 충격적이었다. 그가 한국인들을 혐오하며 쓴 글들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중국인들을 보며 비하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 싶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의 에레나가 된 순이, 팡팡, 나비부인, 미스사이공에 관련된 이야기를 읽으며 한국으로 한정된 역사가 아니라 이 세계에 사는 여자로서 연루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공포영화 뿐 아니라 잔인하다는 이유로 오징어게임도 안본 내가 과연 이 이야기에 연루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이미 같은 인간이고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연루되었다.
조형근 저자님의 통찰도 남다르다. 예를 들어 그의 아버지처럼 한국인이라도 그 시대를 살며 들었던 엔카는 일본인에게 엔카의 의미와 동일하다 느낀다. 이에 대해 “감수성의 힘은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의식의 힘과는 다르다. 손의 촉감으로, 몸의 리듬으로, 심장의 떨림으로 기억되기에 의식이 변하더라도 감수성만큼은 대개 질기고 오래간다. 종종 민족의식의 두꺼운 벽도 뛰어넘는다.(pp.68~69)”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런 부분을 읽으며 그래서 우리는 같은 인간종족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이끌린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엄격하게 보려 애써보고 싶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역사에 연루되어 그 다리를 건너는 초입에 내가 서 있다. 내가 만약 이 다리를 건너면 그 끝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건넌 자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