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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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9명의 철학자의 얼굴이 그려진 표지의 이 책은 <철학의 쓸모>에 대해 적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철학! 하면 나는 신해철이 떠오른다. 철학과 87학번이었다. 또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떠오르지만 대답은 오리무중이었던 중2병들(나를 포함한)이 떠오른다. 나 역시 사춘기 때 저 커다란 질문들이 파도처럼 밀려온 경험이 있다. 그때 내가 광화문 교보에 가서 샀던 책은 듀랜트의 <철학이야기>였다. 책 고르는 운은 따랐지만 번역서의 한계(라고 주장하고 싶은)에 따른 문해력 딸림으로 스피노자정도까지 읽다가 먼지에게 빌려줬다. 최근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나 바로 이 책 <철학의 쓸모>까지 내가 손놓았던 철학자들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 입문책들이 많다. 쉽게 읽힐 뿐더러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의 쓸모를 고통으로부터 찾는다. 그는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치유가 필요한 질병”(p.14)이지만 “본래 철학은 의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p.13)그러므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학처방전으로 철알못도 이해할 수 있는 철학을 제시한다.

‘너 자신을 알라’, ‘나답게 살아갈 용기’, ‘현실을 직시할 용기’, ‘소크라테스의 선문답’, ‘철학은 가혹하고 잔인하다’로 이어지는 사용설명서는 저자가 고통을 치유하는데 효과적이었던 내용이다. 나는 마지막에 철학이 이성과 모순이라는 치료제를 쓰기 때문에 철학은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부분을 읽으며 팩트라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더 잘맞는 부분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책은 육체의 고통, 영혼의 고통, 사회적 고통, 그 외의 흥미로운 고통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그에 대해 고뇌했던 다양한 철학자들만의 사유를 ‘철학의 치료법’으로 제시한다. 육체의 고통 중 ‘죽음’에서, “현재를 즐기라는, 아니 내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이 철학의 처방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일 뿐이다”(p.52)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카르페 디엠”은 내게 불편한 문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부분을 읽으며 속이 다 시원했다. 그대신 저자는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p.55)라며 ‘마음을 환기할 것’을 처방해준다.

사회적 고통 중에는 ‘노동’에 대한 파트가 있다. “우리는 자신만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지만, 문제는 일이 우리의 시간을 온통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의 비극이다.”(p.241)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노동에서 인간을 소외시키는 온갖 성실함을 거부하고 불성실한 일꾼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249)라는 처방을 내린다. 어차피 해야 할 노동이라면 너무 열심히 말고 불성실한 일꾼이 되라는 처방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의외로 이 부분을 읽으며 파리올림픽이 생각났다. 우리나라를 북한이라고 발음한 그 시나리오를 잘못 쓴 사람이나 아나운서를 떠올렸다. 아무리 백년만에 파리에서 다시 치르는 올림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래지만 그 누군가도 불성실한 일꾼을 자처한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확실히 프랑스가 철학적으로 선진국가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ㅋ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양심의 가책에 대한, 칸트의 정언명령 치료법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206쪽에 나와 있는데 “도덕은 우리의 모든 기질을 억누르고, 오만한 자기애를 무너뜨린다(...)악이 아닌 선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도덕은 그저 제약에 불과하다. 또한 도덕이 없다면 우리는 자유의 힘과 그 힘이 미치는 범위, 그리고 그 영향력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p.207) 나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칸트의 그 유명한 정언명령이 이렇게 멋있고 웅장한 뜻인지 몰랐다. 매너라는 것이 악이 아닌 선을 선택한 자유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배운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우울증, 공황장애, ADHD, 트라우마같은 질병에 더 많이 시달린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인들에게 철학을 권유하는 책, <철학의 쓸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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