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의 아줌마 - 사노 요코 10주기 기념 작품집
사노 요코 지음, 엄혜숙 옮김 / 페이퍼스토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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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아줌마, 사노 요코

내가 사노 요코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그닥 예쁘지도 않게 생긴 고양이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는, 녹색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표지의 <백만 번 산 고양이>와 사자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호구(!)로 보였던 <하늘을 나는 사자> 이 두 권의 그림책은 꽤 강렬했다. 이후 <요코씨의 “말”> 시리즈를 보며 1938년생인 이 일본 할머니처럼, 나도 저렇게 쿨하게 늙고 싶다는 팬심을 갖게 했다. 그리고 사후 10주년으로 발간된 <언덕 위의 아줌마 사노 요코>가 내 책상 위에 놓여있다. 그동안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동화, 짧은 글, 직접 그린 그림과 에세이, 희곡 그리고 국민시인이라는 다니카와 슌타로와의 편지가 이 한 권에 묶여있어 뭐야, 없는 장르가 없네, 백화점이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한 권에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던, 아가씨였던, 한 아이의 엄마였던, 아줌마였던, 할머니의 나이에도 당찬 소녀의 마음을 가졌던 사노 요코가 오롯이 녹아있었다. 우리나라 기준의 1938년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할머니 스타일이다. 우리나라의 X세대가 할머니 나이 된 느낌이랄까, 우리나라보다 근대를 빨리 받아들여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가도, 일반적인 일본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 분이 참 별난 분이시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려있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인 <제멋대로 곰>에 나오는 곰은 착하거나 못된, 이분법적인 이야기 속의 우리가 알던 곰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제 멋대로’ 하루하루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곰이다. 왜인지 사노 요코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쓴 다른 동화에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 주인공이나, 육아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 역할의 인물 역시 그런 제멋대로인 사노 요코의 모습이 들어있다. ‘초현실적이고 좀 이상한 짧은 이야기’의 <불쌍해>에서는 같은 여성에 대한 풍자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 여성 스타일을 싫어했나? 싶기도 하다. 희곡 <언덕 위의 아줌마>에는 날씨보다도 더 변덕스러운 감정을 가진 아줌마가 나온다. 그 아줌마의 절반은 사노요코가 살던 시대의 일본 아줌마이고 절반은 유쾌하고 쿨하며 별나게 사는 사노 요코를 닮았다. 여성으로서 ‘아줌마’라는 단어에 대한 애정을 무지개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다나카와 슌타로와의 편지를 읽으면서는(사실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한 성격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한 성격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었어도 아줌마가 아닌 여자로 살고자 했던 사노 요코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사노 요코는 본인 말처럼 못생겼을진 모르지만, 참 멋진 여성이다.

*번역가 엄혜숙님도 참 반갑다. 아이와 함께 즐겁게 그림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한 다섯 살 겨울부터 일곱 살 봄까지.(그 이후는 애가 만화책으로 넘어가면서 같이 읽으려고 하질 않았...) 그때 엄혜숙 번역가님이 번역한 책들을 많이 읽었더랬는데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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