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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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강렬한 책을 만났다.

‘자유가 우릴 추하게 만든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에피그라프를 다시 보니, 저 앞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장이 숨어있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영아가 찾은 진리는 그녀를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또한 추하게도 만들었다. 마치 에덴동산의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부끄러워졌다.”(p.176)로 끝난다. 이 책을 내 맘대로 제목짓기 하자면, 나는 <선악과>로 짓겠다.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마치 오렌지인양, 무딘 빵칼로 잘려 지저분하게 과즙을 뚝뚝 흘리며 독자에게 한입 권유하는 <오렌지와 빵칼>을 소개한다.

주인공 영아는 스물 일곱살의 유치원선생님이다. 유치원생인 은우는 영아에게 모욕감을 주고, 남자친구 수원의 모든 것이 그냥 싫고, 은주의 모아니면 도로 강요하는 가스라이팅에 숨이 막힌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은우의 엄마와 수원은 심리치료 비슷한 센터를 권한다. 이곳에서 전두엽의 중격핵인 NAc자극체를 레이저로 3분 시술을 받는다. 사회성을 통제하는 영역의 글루타메이트가 사라진 영아는 이후 에피그라프에서 말하는 자유를 얻게 된다. (앗, 최대한 스포안하는 선에서 줄거리요약을 하고 싶었는데 잘 된건가 모르겠다)

제목과 따져보면 영아를 둘러싼 오렌지의 이야기다. 그녀의 남자친구 수원은 오년 전인가 대학 다닐 때,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오렌지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영아가 다니는 유치원 애들 중 은우는 오렌지를 가장 좋아한다. 은우의 어머니는 친환경빵집 나루터를 운영하며 은우가 좋아하는 오렌지파운드 케이크를 만든다. 빵칼은 이 소설의 후반부, 클라이막스에 등장한다. 왜 하필 빵칼일까? 싶은데 영아는 서향의학연구센터에서 “ “제 주변의 모든 게 다 싫어진 느낌이 들어서요.” 이제껏 나는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이 정확히 어떤 획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싫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뭉갰을 뿐이다.(p.93)” 라고 생각한다. 나는 ‘두루뭉술 뭉개기’만 해왔던 영아의 성격을 빵칼에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오렌지와 빵칼>이라는 제목을 보고 일본인의 양면성에 대해 서술한 책, <국화와 칼>이 떠올랐다. 다 읽고 나니 제목도 참 잘 지었다. 그렇다. 결국에는 현대인의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다. “25마트는 내 본성, 나루터는 내 껍데기.”(p.159)라고 대놓고 묘사되는 은우 엄마의 양면성이 대표적이다. 주인공 영아 옆, 은주와 수원 역시 마찬가지다. “은주는 세상을 보다 명쾌한 시야로 인식하기에 오직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만 존재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는, 혹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어떠한 분류가 자기 세상에 머물 권리를 박탈시켰다.(pp.55~56)” 이분법적인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는 은주다.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만의 양면성에 대해 말하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동물복지를 생각한다면서 조금 더 비싼 것을 사면서 능동적 소비를 했다고 뿌듯해하면서도 인터넷 최저가를 찾아 헤매는 디지털노마드의 나 역시 영아와 은주, 수원, 은우엄마와 다를바 없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영아의 빵칼이 앞으로 무뎌질지, 날이 설지 궁금하다. 그녀의 칼날이 글루타메이트의 통제에 의해 무뎌지기를 바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 서향의학연구센터로 끌어들이며 날카로워지기를 바래야 하는 걸까? 내 안에 있는 칼날을 한번 꺼내보게 되는 책, <오렌지와 빵칼>이었다.

<나홀로 추리극장>
1. 수원, 은주의 초성만 따면 ㅅ o 과 o ㅈ 이다. 이 착한 애를 이렇게 만든 원흉들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인자 : 합쳐서 ‘살인자’의 초성을 따서 이름 지어준게 아닐까?
2. 오영아라는 이름의 ooo 초성도 주목할만하다. 바로 독자 네님의 이름을 쓰시오 아녀?
3. 서향의학연구센터에서 만난 상담자의 이름이 스칼렛으로 나올 때부터 나는 이 여인의 목소리가 X-file의 스칼렛을 맡은 성우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ㅋㅋ
4. 시술받은 후 수원이 보내준 링크에서 호주에서 한 손으로 운전을 하다 죽은 사람, 넘 소름이다. 은우엄마의 전남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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