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SF다. 인간의 장기를 임플란트로 바꾸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임플란트가 구독형태이면서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누진되는 그런 시스템이다. 아내가 더 수입이 좋아 주인공'나' 유온이 육아를 했으나 헤어진 이후 수입이 없어진 그는 가애가 되었다. 가애란, 수명이 얼마 안남은 사람은 유혹해 연인이 된 후, 중개인 그러니까 매켄지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돈을 쓰게 만들고, 상대방이 죽으면 유산으로 받는 구조다. 좋게 말하면 고독사 할 사람들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아이를 먼저 세상에서 떠나보내고, 아내와 헤어진 후 가애가 된다. 그러다가 같은 가애인 성아를 만난다.
*아무래도 중경삼림의 임청하&금성무가 그려진 일러스트 스티커를 받았기에 이 소설과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경삼림의 금성무는 사랑의 기억을 통조림에 담고 싶어한다. 기한은 만년으로 해서. 전여친에게 이별을 통보받았으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상태에서 킬러인 임청하를 만난다. 유온도 한 카페에서 와이프, 이령으로부터 갑자기 이별을 통보받는다. 그리고 영영 그의 삶속에서 사라졌다. 그때 마시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은 다 녹아버리고 유온은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이령을 기다리며 급속냉동을 실험하던 생방송 유투버(는 아닐 것이다 뭐 그런 미래의 플랫폼이라 치자)에게 다시 얼리는 방법은 없냐고 질문도 한다. 난 이 부분이 중경삼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아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유온을 보며, 슬픔이라는 얼음을 냉동시키고 싶었을까? 아니면 시간을 돌리고 싶었을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이령을 보내지 않고 꽉 잡았을까? 아무래도 유온의 스타일로 봐서는 잡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우유부단하다. 유온이라는 이름처럼. 따뜻하지만 뜨겁진 않다.
*장기를 임플란트로 대여할 수 있는 미래의 이야기다. 기본적으로 버디라고 하는 지금의 챗GPT같은 AI 비서를 뇌에 장착하고 있다. 만 3세 아이에게 이 버디를 심었을 때 생기는 문제들은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쓰게 해도 되는 것인가, 나아가서 챗GPT를 쓰게 해도 되려나, 하는 우려와도 같아 보인다. 유온이 나이가 많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지금 있는 것들이 그때 가서 그런 식으로 쓰인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었다. 한편으로는 성아와 같이 사는 주아를 만나러 갈 때 비타민 음료수를 사들고 가는 모습에서는 “아니 무조건 박카스지, 에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흠칫 놀랬다.
*사실 가애를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유온보다 성아가 훨씬 적합하다. 물론 존재통이라는 심각한 후유증때문이지만. 주기적으로 부팅해야 하고, 그래서 기억을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 동안 만나 보냈던 수애의 미이라 몇 구를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는 유온보다는 훨씬 즐겁게 생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를 영원히 잊지 않으려는 이령과 대조적이면서 매력적이다. 성아와 유온 이 둘 사이에서는 미안하다가 사랑한다로 들리는 커플이었다. 작가는 어두운 밤에 빛나는 달이라는 이미지를 성아에게 녹였는데 잘 어울렸다. 이 책이 총 15장인 것도 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이 SF냐 Romance냐 누가 묻는다면(아무도 안물어보겠지만) 나는 단연 후자라고 말하겠다.
*작명에 대하여
가애라는 직업의 플랫폼과도 같은 라이브 재즈 바의 사장님 이름 참 잘 지었다. 매켄지. 미국의 유명 컨설팅회사 이름 아닌가. 그들이 제공하는 전략컨설팅과 그가 수익을 받게 되는 구조가 뭔가 닮아보였다.
p.s 1. 요새 오렌지가 얼마나 싸고 달고 맛있는데 오렌지 냄새를 죽음의 향 디퓨저로 쓴 느낌이라 요 며칠 밤에 아이 깎아줄 때마다 섬뜩했다.
2. 유온이 차 사고로 잃은 아이 때문에 지하철을 타 버릇 할 때 나오던 노인커플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싸인을 보고는 뿜었다. 작가님은 꼭 상금 2억이 걸린 문학상을 주는 곳에서 1등했으면 좋겠다. (2등까지는 하신 것 같다) 그리고 작가님만의 책을 임플란트화해서 지구인 모두에게 장기구독했으면 좋겠다.
3. 인간의 수명은 영원이 되어가는 와중에도 (물론 돈이 받쳐줘야하지만) 사랑의 기한은 여전히 짧구나. 어쩌면 사랑이야말로 변하지 않고 영원한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