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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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103>은 무피귀가 출현한 검은과부거미섬, 생존을 위해 해저터널로 들어간 지 41년 후, 식수로 마시던 비우물에 바닷물이 유입되며 시작된다. 터널에 있는 거미줄마을 공동체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 이 터널 밖을 나가 외부에서 차폐문을 열어야 한다. 그 주인공이 바로 16살 서다형이다. 왜 어른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 책이 영어덜트소설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터널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환기구 날개를 부수지 않을 얇은 몸이 필요하다. 참고로 다형이의 동갑내기 친구 재이 역시 이 터널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거미줄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형이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녀의 사투가 시작된다.

무피귀라는 피부가 없는 괴물들이 이 섬의 멧돼지나 염소를 잡아먹을 뿐 아니라, 사람도 보이는대로 잡아먹는다. 이 위협적인 존재를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인물들이 나온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목숨을 바쳐 희생을 자처한 사람들이었다. 손가락을 펴서 세다 보면 다섯 명정도다. 터널에 들어간 사람들을 위해 희생한 황선태. 바리섬에서 무피귀의 공격을 받았을 때 죽은 정하의 아버지, 언더원의 일원인 이준익, 이 마을에 네피림이 등장했을 때 이장님, 그리고 등대에 살고 있던 조태관의 아버지이다. 이들 모두 사랑하는 이들, 즉 아들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여섯 살 난 아이를 위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지만 모두가 위대해 보이진 않는다. 대를 이을 자손을 위해, 아들을 위해 죽었던 이들의 후손들은 타인에 대해서 관용이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의 목숨만을 위한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기 자식이 아니어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 사람들을 위해 희생 한 사람들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할 줄 안다. 이타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내새끼 지상주의’가 최고조로 이른 한국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이타심이 있는 사람들의 정의와 평등은 이기적인 사람들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는 이 재난 속에서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어둠 속을 한 걸음씩 내딛는 다형이와 정하가 존경스러웠다. 열여섯 살이지만 이타심이 무엇인지 안다. 작가는 이 둘과 희생을 자처한 사람들을 통해 내 자식, 내 가족 말고, 옆집, 우리 동네 사람들 모두를 위해야 살길이 있고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소설로 읽혔다.

p.s 1. 디테일이 있는 소설이다. 소화기를 물통으로 쓴다거나, 다형이의 수리검이 무피귀를 잡기 적합한 무기형태인 점 등등 작가가 얼마나 상상력을 발휘해 썼을 지가 눈에 보였다.
2. 에필로그의 섬뜩함이 이 시리즈의 2를 기다리게 한다!!
3. 근데 무피귀가 물을 무서워하는지는 잘 이해가 안된다. 특히 반무피귀인 이준익이 인간이면서 고무보트를 번쩍 드는 걸로 보아 해병이었던 것 같은데 왜 물을 무서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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