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 전시회 상상 동시집 26
강벼리 지음, 정마리 그림 / 상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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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을 떠올려 본다. 할머니에게 떡 달라고 쫓아오는 호랑이, 분명 무섭게 생겼는데 어디가냐고 친절하게 묻는 늑대, 혹부리 영감, 구미호, 도깨비 등등...이야기 속,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참 요상하게 느껴졌다. 길 가다가 보이는 고양이나 개들은 말을 못하고 나의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런데 이야기 속, 동물들은 주인공에게 못된 짓을 벌이고 된통 당하기도 하는 그런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요괴전시회>에는 그 요상한 존재들이 시인으로 나온다. 근데 그건 다름 아닌 나의 또 다른 모습이다.(표지만 해도 그렇다. 분명 양배추 인형처럼 보이는 귀엽고 똥똥한 여자아이지만, 깨진 거울 사이로 보이는 모습은 뿔이 달렸으며 다양하고 기괴하다, 그림자마저도) 그리고 이 시집에 등장하는 내용 중, 공감하지 않는 아이들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러자. 나도 때로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 앞에서 ‘맛있는 냄새’(p.71, <요괴전시회>)를 맡을 줄 안다. ‘좀 비밀이 많은’(p.54<좀 비밀이 많은 아이>) 좀비이기도 하며, ‘구르기를 못해도 미술을 잘하는 호호 웃는 아이’(p.56. <구슬치기에 미친 호연이>:내가 변형해보았다, 참 요상하지 않은가?)이기도 하다. 기괴한 나의 모습, 괴식이 문제라고 먹는 것 마저 지탄받는 요즘이지만, 그런 괴식이 재밌기만 한 그런 요괴말이다. 평범함을 강요받는 현실이지만, 나의 괴물모습이 가끔은 튀어나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 시집을 읽으며 위로받는 나같은 어른이 있다. 헤헤.

*그렇다고 그런 요괴, 나쁘게 말하는 귀신같은 존재들이 주인공으로 드글드글 나오는 시집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난 사실 <비밀상자>라는 시가 제일 좋았다.

상자 속에
작은 기차를 넣었습니다
나는 작은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는 기억을 찾아 달렸습니다

비밀 고개를 지나갈 때였습니다
연필 한 자루가 뚝 떨어졌습니다
오래 전에
훔친 친구 연필이었습니다
부러져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옵니다
덜커덕 흔들리는 소리에
상자 하나가 뚝 떨어졌습니다
훔친 마음을 넣었습니다
나는 상자 속에서
훌쩍 뛰어내렸습니다

기차가
부러진 친구 연필처럼
멈추었습니다

친구 연필이 부러워 몰래 집으로 가지고 온 연필 한 자루. 차마 쓰지 못하고 훔쳐온 내가 미워 부러뜨린 연필. 이 연필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부끄러운 추억. 훔친 마음을 상자 속에 넣고 떠나 보내려 하지만 기차가 멈춰버린다. 나만의 비밀을 없애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친구에게 달라고 했으면 줬을지도 모를, 그 연필 한 자루를 보며 아이의 마음이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다.

*<103세 할머니를 찾습니다> 시도 그렇다. 요새는 재난, 긴급문자가 전국민에게 전달되는 시대다. 어느 동네에서 헤매고 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상착의를 메시지로 받는다. 이 분은 어디서 헤메고 계신걸까 걱정된다. 시인은 ‘호랑이랑 마주쳤을지’(p.82)도 모른다고. 그래서 ‘꼬부랑 기웃거’(p.83)릴 수 밖에 없음을 노래한다.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요괴마음이 할머니가 떡 달라고 쫓아오는 호랑이에게 쫓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지만 할머니는 씩씩하게 “등을 활짝 펴고 하얀 고무신을 던졌을지 몰라”(p.82)라고 나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준다. 이 시집이 이런 식이다. 요상하지만 위로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엄마나 아빠에게는 말할 순 없는 비밀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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