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이가 어떤 책에 대해서 좋아하는지, 안좋아하는지는 굳이 말을 안해줘도 안다. 학교나 어디 이동시간이 긴 곳으로 갈 때, 들고 가는 책이라면 재밌어하는 책이라는 몸짓의 언어다. 킥킥거리며 읽길래 “넌 그 책이 재밌어?”라고 물었다. “응. 웃겨.” “웃기기만 해?” “응.” “...” ‘T’다운 독후감에 잠깐 고뇌했다. 그래도 ‘네가 밖에 나가서 누구 험담하는 아이는 아닌거 같구나’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든다. “근데 엄마 이거 지난번에 읽었던 <개도 잔소리한다>랑 비슷하네” 아 맞네. 4학년 1학기에 학교에서 시를 한 편 적어오라고 해서 같이 머리를 맞대고 여러 편의 동시집을 읽었더랬다. 내 기억 속에 사라진 동시집 제목을 기억하는 걸 보니 <엄마의 아바타> 시처럼, 내가 너의 미니미에게 잔소리할 일은 없겠다 싶다. * <연신내 시장2>는 진짜 여러 번 읽어주었다. 슬이가 왜 이들이 빙 돌아 빵 가게 먼저 가는지 이해를 못했다. “여름에 얘네가 닭을 사러 시장에 갔는데 정육점 아저씨가 수박을 드시고 계시잖니. 그래서 드시라고 매너있게 빵 가게부터 간 걸 표현한거지.” 설명해주고 나서 후회한다. 얘기해주지 말걸. 이런 모멘트들이 많다. 이 시집에는. 행간을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시들. <우리 집 거실에 악어 한 마리>도 그렇고 <뉴스>도 그렇다. 악어와 눈이 마주쳤을 때와 뉴스에서 엄마가 티비를 껐다는 마지막 연을 읽으며 엥? 했더랬다. 악어에 대해서는 우리집의 대화를 단절 시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아이에 대해 이야기해볼만하다.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뉴스 시에서는 엄마가 티비를 끈 다음 이어질 이 가족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그것을 상상하는 것이 동시의 힘이지. 동시가 어떤 것인지를 오래간만에 다시 느껴본다. 참 재밌다. 잔소리 대신 이런 상황에 맞는 동시를 읽어주는 위트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 다양한 스타일이면서도 재미있다. 아이의 소감대로 웃긴 책이지만 시인이 ‘쥐구멍’이라는 시를 책의 타이틀로 픽한 것은 의미있어 보인다. 책이 노란색으로 되어 있는 점도 그렇다. 시집커버를 다양한 색으로 출판하는 문학동네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책의 끝 부분에 실려있는 세월호에 대한 두 개의 시에 무게를 준다고 생각한다. 앞표지에 ‘이창숙 동시집’‘이라는 글씨가 표지 밑으로 침몰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4년에 그런 일이 있고 벌써 9년이 흘렀다. 그리고 많이 잊혀지고 있다. 이 사건의 기억을 잊지말라고. 잊을 뻔한 우리의 마음을 쥐구멍에 들어갈 뻔한 마음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