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챗봇을 설치하겠습니까? 한무릎읽기
은상 지음, 손수정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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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은 티머니 카드만 충전해주면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홀로 의식주 해결이 가능하여 학교를 알아서 다닐 수 있는 나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여진이도 그렇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회사를 다니는 어머니와 편의점을 운영하는 바쁜 아버지 사이에 사각지대가 있다. 그 손길이 닿지 않는 시간,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감지 않은 머리를 벅벅 긁어대는 여진. 스마트폰과 많이 놀아봐서 익숙한지, 대면으로 다가오는 지훈이보다 새로운 앱, 외로챗봇에 관심이 더 많은 아이.

300페이지가 넘는 책의 독후감 숙제가 있다. 선생님께서 한 달 전에 내준 과제지만, 제출 당일까지 여진이는 읽지도 않았다. 모쏠 소리가 듣기 싫어 사귄 남자친구에게 해달라고 하니 평소보다 좀 긴 메세지로 이별을 통보받는다. 동생이 있어 그런가, 야무진 친구 미라에게 전화해 귀동냥이라도 들을까 하지만 의중을 간파당하고 실패한다.(이런 부분이 정말 현실적이다) 외로챗봇에게 부탁하니 싫은 소리 하지않고 한번에 해결해준다. 이 앱이 여진이의 베프가 되는 순간이다.

슬이는 이 책을 읽고 외로챗봇을 깔아보고 싶다고 한다. 내 앞에서는 여진이처럼 숙제를 베낄 것 같지 않다고, 자기는 정말 모르는 것 검색할 때 초록창 대신 질문할 것 같다라고 대답하지만, 내 눈에는 내 딸이 여진이처럼 보인다. 아침에 등교 준비하라고, 3분마다 알람하는 내가 없다면 얘도 여진이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에는 내가 부모로서 내 아이를 보며 느끼는 바가 그대로 녹아있다. 대면으로 익숙하지 않은 관계들, 너무 많이 보는 스마트폰, 내가 없을 때 줄줄 샐 것 같은 바가지... 그게 내 아이이다. 그에 비해 동생이 여럿있는 아이들은 어찌나 야무진지, 뭘 들고만 있으라고 해도 잘 떨어뜨리는 내 아이에 비해 동생 손을 잡고 학원에서 데려오는 또래를 볼 때면 쩝. 소리가 절로 난다.

머리를 감지 않고 병원에 가는 게 아이에게는 좀 충격적이었나보다. “얜 너무 더러운데?”라고 말한다. “너 나 없어봐라 니가 알아서 머리감고 학교 가겠니”라고 대답해본다. 왜 이 소재가 필요했을까 생각해보면, 외로챗봇은 머리감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 매일 머리를 감는다고 해서 이 기름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 압력 때문에 머리카락이 손상돼 끊어질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모돼.(...) 따라서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 건강을 유지하면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p.49)라고 알려주는데 이는 일반적인 지식이다. 맞는 말이지만, 의사가 본 여진이의 머리 상태는 이랬다. “학생은 머리에서 기름이 많이 나오는 유형이에요. 이걸 지성 피부라고 하는데 두피가 지성이면 매일 머리를 감아야 해요.”(p.84) 챗봇이 알려주는 일반적인 상식과 나의 개별적인 컨디션은 다른 문제였다.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기는 벅찬, 전문가가 필요한 모먼트다.

어른들도 챗GPT 광풍이 불어닥친 요즘이다. 이 프로그램이 화가보다도 더 그림을 잘 그린다며, 작가보다도 글을 잘 쓴다며, 영어도 잘 하고 무엇이든 가르쳐준다며 각자의 직무에 맡는 질문하는 법이 쓰인 책이 출판업계를 휩쓸고 있다. 장점도 있으면 단점도 있다. 이제 글쓰기 숙제를 베껴온건지 어떻게 진위를 알 수 있을까? 대학생들의 리포트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초등학생의 영역에도 대두된 문제들이다. 사실 이런 여러문제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외로챗봇을 설치하겠습니까?>는 외로운 아이와 그 외로움에 유일하게 반응해주는 스마트폰 특히 외로챗봇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단어를 고르기가 어렵다. ‘문제’라는 단어가 맞지 않는 듯하다. 생각보다 이 문제는 현실적이며, 이 문제를 발생시킨 외로챗봇은 생각보다 인간적이고 다정하다. 외로챗봇은 여진이에게 “친구란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소중한 존재’라는 정의”(p.89)를 말한다. 여진이 나이 또래, 그러니까 내 아이의 시대에는 외로챗봇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변화해가는 세상을 우리 부모 세대는 좀 더 큰 눈을 뜨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 책이 얘기해준다.

* 여진이는 과연 4.0 버튼을 누를까?에 대해.

여진이는 편의점을 하시는 아버지가 아침에 알바를 구해 이제 아버지의 손길을 받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 처해있는 아이라면, 이런 책이 아이를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분명 외로챗봇은, 챗GPT는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도구는 맞는 것 같다. 낯선 과학의 얼굴의 이것들이 우리에게 다정하게 다가오는 중이 맞는 것 같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래서 난 업그레이드 바로 누를 거라고.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런 내용으로 우리에게 문제점을 던져주는 이런 책은 영원할 거라고. 그리고 챗GPT가 알려주는 일반적인 지식보다 훨씬 가치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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