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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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이라는 학문을 귀로 들을 때면, 왠지 모르게, 사람 손이 한번도 닿지 않는 어떤 장소에, 그리고 시간도 멈춰버리고 공기도 흐르지 않는 그런 곳에 혼을 담은 고고한 유물이 둥둥 떠다니는 장면이 상상된다. 나만의 고고학 판타지라고나 할까.(전천당을 보는 꼬맹이의 영향을 너무 받았나!) 과학의 도움으로 밝혀져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아직도 인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곳이지 않을까?

저자 역시 그랬다. 머리말에 내 기억으로는 최근에 백희나님이 내신 <연이와 버들도령>의 물약 3가지에 대해 나오는 옛이야기를 꺼내신다. “이 이야기 속에 고고학자가 하는 일의 본질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했죠. 남편의 해골에 재생의 물약을 부어 남편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준 부인처럼 고고학자는 대체로 그 형태가 온전치 않은 유물에 자신의 지식과 상상력을 들이부어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아닐까, 저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오고 있습니다”(p.10)

개인적으로 나는 최근 드라마 ‘아라문의 검’을 보며 고대사회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나던 중이었다. 암만 봐도 드라마 속 ‘뇌안탈’은 네안데르탈인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와한족’은 분명 수렵 채집을 일삼는 작은 부족으로 보였고 ‘아스달’이라는 도시 문명인들에 의해 정복당한다. 폭포, 그러니까 큰 강을 중심으로 살던 아고족들은 언어나 문화가 다른 이유로 연합하지 못하는 아프리카 부족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고고학, 그 고대의 시간으로 향하는 학문에 대한 책. 아니, 아니 학문이 아니라 21세기에 내가 먹는 김치와 고기들의 옛이야기, 훌리건이라고 불리는 축구팬들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이유(최근에 항저우 아시아 게임에서 축구를 봐서 그런가 더 와닿음..) 낙서가 힐링이라던가, 개, 고양이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지난 겨울, 예술의 전당에서 구경하고 온 이집트 미라전 ‘부활을 위한 여정’에서 분명 이집트 유물인데 죄다 from 네덜란드여서 뭔가 제국주의 시대의 맛만 보고 온 느낌이었는데 영국놈들이 더 했구나 등등 ㅋ 깨알지식까지 알차게 읽어낼 수 있었다. 내가 21세기에 먹고 마시고 즐기고 추구하고 욕망하는 그 모든 것들의 시작! 나도 고대의 시간에 존재하던 그들도 같은 지구라는 공간에서 이 유물들을 보며 그들의 삶을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해주는 고고학이었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농사와 고인돌이었다. 내가 배워온 역사라는 과목을 통해서는 고인돌을 그저 권력의 상징물이라고 생각했더랬다. 이 고고학책을 읽으면 그것이 ‘협력하고 공생하는 인간의 기원’(p.104)이었음을 배운다. 무조건 총, 칼과 같은 무력을 통해 얻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라 한 해의 농사를 통해 그 부족의 생사가 갈리는 이상, 그 공동체가 하나의 목숨줄로 연결되어있음이 상상이 되었다. 농사는 경험자의 지식이 많이 필요한 일로서 그 고인돌 아래의 목숨은 그 한덩어리의 죽음을 책임졌던 리더였을 것이라는 것을. 오늘날의 정치적 리더와 비교가 되며 자동 한숨 발사되던 그런 책이었다.


이 책 정말 쉽고 재밌었다. 옆에서 친근하게 이야기해주는 문체여서 그런걸까? 초등학생 고학년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칼라풀한 사진이 맘에 쏙 들었다. 왜 있는지 모를 흑백사진이 아닌, 글과 상통하는 또렷한 사진이 책의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고고학에 빠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였습니다. 흑백의 우중충한 교과서들 속에서 총천연색의 화려한 지도들이 실린 사회과부도에 시선이 꽂혔죠.(p.345)
그래서인지 문체와 사진까지 호기심을 100% 충족시켜주는 책이었다.

p.s 중국과의 동북공정에서 우리 김치가 자주 도마 위에 오르곤 하는 요즘.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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