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픽션 걷는사람 소설집 11
최지애 지음 / 걷는사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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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는 이렇다. 르누아르가 그린 것 같은 화사한 꽃밭에 벤치가 있다. 거기에 소설가 중섭씨나, H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왼쪽을 보고 앉아있다. 결혼한 미주를 질투하고 이혼한 미주를 위로해주던 선영씨가 오른쪽을 보고 개를 데리고 앉아있다. 한마디로 등돌리고 앉아 있는 그림이다.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소설이 생각난다. 거기서 그 여인은... 내 기억속에 휴양지에서 남자들이 꼬시고 싶어하는 그런 여성이었는데. 선영씨는 <달콤한 픽션> 끝까지 독신이었는데. 그럼, 저 개는... 달용이? 굳이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고 해도, 이런 장면은 익숙하다. 저 둘이 커플이던 아니던. 이 표지를 보는 독자들은 자기들만의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표지, 참 괜찮다.

* 이 책에는 내가 집 밖을 나서면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우리집 앞의 중랑천을 따라 만들어놓은 산책로에는 어르신들이 참 많으시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비가 와도 눈이와도, 위험하다고 중랑천 근처 출입을 금지하는 방송을 해도. 나보다 빠른 걸음을 걷는 분들도 계시지만 <선인장 화분 죽이기>의 남편 분처럼 “지팡이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조금씩 끌며 앞으로 나아가”(p.13)시는 분들도 계신다. 내 얘기와도 비슷했다. 동동이에게 ‘엄마가 섬그늘에~’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패밀리마트>의 화자가 비트코인에 임하는 자세, 책상 앞 포스트잇에 유명 명사들의 문구를 적어놓는다던가, “비에도 지지 마라! 나는 이런 말들을 수시로 곱씹었다”(p.106)같은 행동도 그랬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왠지 대필 원고를 쓰기 시작하면 꼭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p.161) 시험기간에 보는 드라마가 꿀잼인 경험을 안한 대한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러고 싶다. 심지어 반려견의 이름마저 비슷했다. <달용이의 외출>에서 “사실 달용이의 이름은 원래 달용이가 아니었다. (...) 처음에 나는 다롱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붙여 주었다.”(p.227) 내가 친구 집에서 허락없이 데려온 새끼 고양이 두 마리의 이름도 알롱이, 달롱이라 붙여줬었는데. 결국에는 엄마는 한 마리만 키우라고 하셨다. 내가 알롱이를, 다롱이는 내 친구가 데려갔더랬다. 그랬다. 기시감 1도 없는 이 여러 단편들은 나와 저 사람들(내 책상 왼쪽,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중랑천을 걷는 저이들)의 이야기였다.

* 달콤한 픽션의 세계가 아닌 이 현실에서는 부당한 것들 투성이었다. 아픈 아빠와 살 아파트가 필요했을 뿐인데 베트남부부와 아이들을 내쫓아야 하는 상황의 <패밀리마트>, 세월호 사건 이후 엉망진창이 되버린 가족을 그리는 <달용이의 외출>. 아픈 엄마를 모셔야 하는 고등학생 <까마귀 소년>.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다 같이 벌 받는 기분이 드는 것, 가족이 아프다는 건 그런 거였다.”(p.301)라는 문장이 보여주는 스윗 홈이 아닌, 홈. 그래서 이런 주문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모든 결말은 해피엔딩이어야 해!”(p.101)

* 최지애 작가님의 책은 처음 접했는데 읽다보니 여자 이기호 작가님 같은 느낌이 있었다.(기분이 나쁘시려나, 하지만 전 이기호작가님 작품 좋아합니다) 이 유머, 아니 이 웃픈 이야기들은 독자를 후훗, 웃게 하지만 이내 씁쓸해지는 그런 뒷맛. 여기에 까아아아악, 까아아아악 소리가 들리는 달콤씁쓸한 픽션.

*이상하게 지치는 날들이 계속 되는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 이 책 속의 인물들이 재미있으면서도 묘하게 나랑 똑같다는 데자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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