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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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었을 때, 난 이 책의 주인공이 와이라(퓨마)인가, 로라(저자)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죄책감을 느꼈다.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이 소중한 존재들이 나에게 와 닿는 의미를 생각하면 말이다.

“야심만만한 여자애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달리기 경주는 누가 다윈의 적자생존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을 능력자인지 증명할 기회였다. 그 경주는 미래를 위한 훈련이었다.”(p.30)

로라가 다니던 학교에서 달리기를 하던 추억에 대한 문장이다. 학창시절부터 적자생존 경쟁에 부담스러워하는 그녀. 이후 이곳저곳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석 달 동안 볼리비아 자유여행을 계획한다. 아마도 도시생활의 번아웃으로 방랑 중이었을 2007년도, 스물 넷 저자의 앳된 얼굴이 그려진다. 도시 위, 아니,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도 벅찬 모습이다. 이 여행도 지칠 무렵 우연히 ‘파르케’(볼리비아 동물 복지 자선단체)에서 봉사자를 모집하는 광고지를 보고 무작정 찾아가며 이 책은 시작한다. 이곳에서 야생동물 밀매 희생양인 동물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난다. 스포는 할 수 없으니 대략 화재, 떠남, 사라짐, 죽음들이 겹친 이야기들이다.

인간과 함께 이 위험한 도시에 적응한 개체는 사람의 손에 쉽게 닿지 않는 거리의 새들, 그 외엔 고양이가 있다. 이들은 많은 캣맘 집사들을 거느린 존재들이다. 저자의 와이라에 대한 사랑은 어느 정도는 이 고양이과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퓨마의 이름은 여든 가지가 넘게 기록된 것으로 전해진다. 플로리다 팬서, 쿠거, 마운틴 라이언, 캐터마운트, 페인터, 마운틴 스크리머, 레드 타이거, 쿠과콰라나, 고스트 캣.....”(p.15) 퓨마가 불리는 이름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들을 ‘자세히 보았던’ 인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자세히 본다는건 사랑한다는 뜻. 로라는 ‘퓨마’라고 부른다.
포유류여서 모기에게 같은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다른 존재와 교감한다는 일이 어떤 느낌일까? 가끔 수조 속 물고기의 감지 않는 눈이나,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는,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관찰하는 비둘기의 눈을 보면 생기는 질문이다. 이 대답은 로라의 노력덕분에 나는 꽁으로 알게됐다. 로라도 와이라와 유대감을 맺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저자의 능력이 무얼까 생각해보면, 책 초반의 코코(원숭이)였을 것 같다. 아이를 길러본 부모들이 체험할 수 있는 업어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로라는 코코를 어깨에 메고 갔긴 하지만. 파르케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나, 여기를 떠날 생각만 하던 로라에게 남자멤버가 코코를 숙소로 데려다주라는 미션을 준다. 스물 네살의 로라는 코코(원숭이)를 어깨에 감고 가면서 인간과는 다른 모양의 심장이지만 규칙적으로 뛰고, 나와 같이 뜨거운 피가 흐르는,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정온동물의 생명체를 느꼈을 것이다. 이 묘사가 아름답진 않다. 코코는 생각보다 그녀에게 무거웠고 "놀랍도록 뾰족한 코코의 턱이 내(로라) 정수리를 육중하게 짓누른다"(p.67)라고 표현한다. ㅋㅋ 그녀가 이 곳을 떠났을 때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힘 역시 코코의 죽음이었다.(사실 처음 파르케에 온 것도 코코사진 홍보지 ㅜ 였다) 그렇게 그녀는 이 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이며 일원이 되어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와이라와의 관계를 쌓는 부분의 묘사에서 물집 표현이 기가막혔다.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로라의 발에는 물집이 생기고 있었는데 와이라를 돌보는 닷새동안 "물집이 부풀어 오르다가 터지면서 피와 고름이 낭자해진"(p.82)다. 이 물집은 단단한 피부가 되었듯이 로라 역시 목차처럼 껍질 속의 나- 깨어나는 나 – 새로운 나로의 진화를 거듭한다. 그런 그녀를 응원한다.

책에는 후각에 예민한 저자의 표현이 많다. 자유 여행 중 “맥주 냄새와 희미한 토 냄새가 풍기는 공용 숙소”(p.22)같은 문장으로 ‘이 양반 후각 예민하네’를 느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파르케가 있는 정글의 온갖 냄새를 열심히 풍겨주신다. (이런 부분은 저자가 와이라와 비슷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ㅋ )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이 정글이 내 코 바로 앞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독자인 나로서는 생생한 표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지만, 이렇게 후각에 고통받으면서도(!) 여기서 만난 이 아름다운 존재들과 함께하는 삶이 진행 중이라는 점이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슬이와 동물원에 간 날이 떠오른다. 그림책이나 한글카드로만 보던 동물을 내 아이에게 직접 보여주려니 내가 더 신났다. 어린이대공원에 도착해 생생한 동물들을 처음 마주한 슬이는 그닥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풍선, 아이스크림 콘, 그리고 그림으로 그려진 동물표지판을 더 좋아했다. 엉덩이만을 보여주는 추레한 원숭이들, 우리 쪽으로 고개를 파묻고 홀로 서 있는 코끼리,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누워있는 늙은 사자, 100미터 이상 달려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탄력없는 다리를 가진 망아지... 나는 차라리 아이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다행이야, 라고 생각했다. 내가 중학교때 친구들과 기린을 보러 대공원을 갔을 때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문화시민인가 생각해보면... 바바파파와 그림책의 영향이었던 것도 같다. 동물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몇 권 읽고 보니 개네가, 세상 그렇게 불행해 보일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동물들과의 교감뿐 아니라 이 정글을 향해 끊임없이 오고가는 벌목 트럭들,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이 지역의 기후위기 문제들, 돈이 되는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숲을 ‘면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몰릴 대로 내몰린, 사피엔스의 언어를 할 줄 모르는 식물과 동물들을 보고 있자면 사피엔스의 마지막이 상상되지 않을 수 없다. 돈 있는 사람들은 화성에 우주선 띄우고 잘 살고 있으려나. 그래서 이렇게 가속도가 붙은 환경문제를 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무력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중 우리 동네 아파트에서 검은 고양이를 만났다. (책 표지 다음 사진) 온몸이 새카만 이 아이를 와이라라고 이름 붙여주기로 했다. 그러고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보자고 마음 먹어진다. 너도, 내 새끼도 살 수 있도록. 배송말고 내 발로 걷는 것부터. 이런 마음이 생긴다는 것, 이것이 고양이과들이 인간에게 부리는 마법같은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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