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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1~2 - 전2권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3년 8월
평점 :
* 이 소설은 일단 ‘조엘 디케르’라는 작가에 대해 줄을 긋고 시작해야 한다. 스위스 제네바 출생의 1985년생 작가. 아버지는 프랑스 문학교수이고 어머니는 서점을 운영하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렸을부터 작가로서의 두각을 많이 나타냈지만 ‘HQ’라고도 불리우는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이 책을 시작으로 ‘조엘 디케르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도서관에서 확인해보시라. 그의 여러 제목의 책 들 중 이 책이 단연 가장 너덜(!)거릴 것이다)
* 이 책은 알래스카 샌더스가 시체로 발견된 1999년과 HQ로 유명작가가 된 마커스 골드만의 2010년이 교차하며 서사가 진행된다. 왜 그가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 한복판에서 독자인 우리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밖에 없는지 소설 초반부에 설명한다. 나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 눈으로 이런 사건을 읽을 수 있다는게 '조엘 디케르'식이 아닐까 싶다. 다음의 발췌문은 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이자 화자인 마커스가 이 사건을 맡은 페리 경사와의 관계를 표현해주는 글이다.
“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은 독자라면 내가 페리와 어떤 인연으로 친구가 되었는지 알고 있다. 페리를 처음 만나는 독자들을 위해 짧게나마 그 이야기를 해두고 싶다. 나는 2년 전 해리 쿼버트 사건 당시 페리를 알게 되었다. 페리는 담당 형사였고, 그와 나는 놀라 켈러건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함께 동분서주했다. 우린 결국 놀라를 살해한 진범이 누군지 밝혀냈고, 나는 두 번째 소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페리와 나는 우정을 쌓았다.”(pp.54-55)
HQ, 그러니까 해리 쿼버트의 약자인 이 책을 알아야 <알래스카 샌더스 사건>이 더 재밌어진다. 책 표지에도 "600만 부 판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은 전설, 이 소설은 전설의 완결판이다"라고 써있을 정도니. 독자들 입장에선 다들 조엘 디케르라고 생각하며 읽을, 마커스 골드만이 왜 11년전 알래스카 사건에 몰입하게 되는지 궁금해지는 것은 덤 ㅋ
* 이런 서사적 재미 말고도 각각 인물들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중 인상깊은 문장들도 있었다.
“친구란 살다보니 운 좋게 만나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가 친구라는 사실을 어느 날 눈앞에서 보여준다”(p.88) 마커스가 페리의 가족(헬렌 T_T)에게 연말 카드를 받고는 직접 만든(그것도 <볼티모어의 서>라는 책에 나오는 큰 어머니가 가르쳐준 바나나 들어가는) 케이크를 전달하며 느끼는 감정이다. 이 부분은 복선처럼 나중에 다시 보면 진짜 슬픈(읍읍) 부분이다.
“돈의 함정이 뭔지 아니? 돈을 주면 모든 종류의 감각을 살 수 있어. 하지만 감각과 진짜는 달라. 돈은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감각을 만들어줘. 진짜로 사랑받는 게 아니어도 사랑받는 느낌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돈으로 비바람을 피할 지붕은 살 수 있어도 내면의 평화를 사지는 못해.”(p.191)라고 혼자남은 큰아버지가 마커스에게 하는 말이다. 작가의 다른 책의 이야기를 번외편처럼 엮어서 덕후들은 엄청 좋아할 디테일들이다. 플러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문장들이 이 책의 장르를 잊고 몰입하게 만드는 부분들이었다.
* “욕망은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하게 책 표지에 쓰여 있는 문구다. 그런 욕망은 비밀로 간직된다. 그리고 누구나 내밀한 비밀이 있다.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들. 이 책에도 그런 인물들 투성이다. 화자인 마커스도 남에게 선뜻 말 못하는 연애사가 있고, 페리도 그랬다. 이들이 작가이고 경사이기에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런 비밀을 갖게 되면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오히려 적당히 거리가 있거나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주인공들이 독자에게 그 비밀의 문을 여는, 고해성사를 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의 가족도 모르는, 고통이더라도, 찌질한 감정이라도, 그만이 간직한 그 욕망의 비밀을,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는 시원하게 알려준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잡고 단숨에 읽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