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사회 - 순 자산 10억이 목표가 된 사회는 어떻게 붕괴되는가
임의진 지음 / 웨일북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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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표지에 대하여
  숫자사회라는 글자가 바위처럼 보이는데 우리 사회에 이미 뿌리깊게 자리잡은 것처럼 보인다. 그 안에 노트북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것으로 보이면서 흐릿한 단색의 사람이 그 숫자사회 글자 바위들을 관통하고 있다. 보통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이 정방향인데 거꾸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걷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순방향, 정방향 쪽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그리고 빨갛다. 읽는 내내 이 책이 지금 식탁위에 있구나, 쇼파위에 있구나, 피아노 위에 있구나 어디서든 "나 여기 있소!"하는 존재의 무거움(!)을 느꼈다ㅋ. 그리고 빨간색이라는 알람의 상징이, 당장 응급실로 가야함을 알리는 사이렌처럼 우리 사회가 위급하다라는 느낌을 잘 전달하고 있었다. 강렬했다.

* 읽으면서 함께 떠오른 책
-<<닮은 방들>>(박완서), <<쌀, 재난, 국가>>(이철승), <<그건 부당합니다>>(임홍택)

"젊은 세대를 분석한다는 책들은 대게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다른 동료 기성세대에게 (...) 경험 및 정보 전달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젊은 시절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했던 것과 지금 세대가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나, 진정으로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공감하고 싶다면 이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욕망과 불안의 이중주에, 그 간극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p.198) 이런 부분도 그렇고 <<숫자사회>> 머리말에서 다룬 놀이기구의 패스권 이야기를 들으며 <<그건 부당합니다>>가 떠올랐다. <<90년대생들이 온다>>를 쓴 저자의 후속작품으로 MZ, Z세대라고 불리우는 이들을 관찰한 책들이다. 그 책에서도 매직패스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자본주의적 시스템에 대해 경계하는 글이 스쳐지나가는데 이 <<숫자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을 알면서도 스며들어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지적한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라 불편하기도 하지만 분명 잘못된 방향이기에 사이다 같은 부분도 있다.

"돈을 벌자, 남들보다 더. 아파트를 사자, 기왕이면 서울의 입지 좋은 곳으로. 최근 몇 년 사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돈과 아파트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가치를 가진 두 대상에 더욱 직접적인 열망을 드러냈고, 나아가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p.24) 이 부분을 읽으며 <<닮은 방들>>(박완서)이 떠올랐다. 아마도 1970-80년대의 아파트를 욕망하고 그 곳에 사는 철이엄마를 미러링하는 '나'. 아무리 따라해도 '나'는 철이엄마의 행복을 가질 수 없으며, 철이엄마도 행복하지 않다. 물질적인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한국인은 삶에 만족하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느낀다."(p.51), "사람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는 거의 모든 대상을 돈으로 살 수 있기에 결국은 돈으로 수렴한다."(p.51)는  저자의 문장에 0.000001의 반박조차 불가라,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벼농사에 종사했던 전근대 사회에서 단단한 공동체는 물리적인 생존에 필수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돕고 의지하는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불안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 역시 수행했다. 또한 공동체 내 다양한 정보 공유와 긴밀한 협력 체계는 근대 이후 도시 산업화 현장에 이식되어 한국의 빠른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다 같이 먹고 살려다보니 자연스레 뭉칠 수 밖에 없었던 농촌 마을 공동체의 생활양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중간은 가야하고 평균은 해내야 한다는 심리적 마지노선과 튀지 않고 적정선을 유지하려는 눈치 보기 습성의 씨앗을 심는 데에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쳤다."(p.153) 주석에도 써있던 <<쌀, 재난, 국가>>책이 반가웠다. 작년에 이 책 흥미롭게 읽었다. 제목 세 개의 키워드를 렌즈삼아 전근대의 쌀농사짓던 시절 형성된 한국인 성격을 설명한다. 이를 토대로 현재 한국사회를 조명하는 책이다. 지금은 전근대의 공동체와는 다른, 4차산업시대의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시대이다. 불확실한 미래에서 우리는 특히 유럽이나, 이웃한 중국과 일본과 다르게 분단된 이 특수상황의 한국사회는 대체 어디서 모델링할 수 있을 것인가, 나도 이 부분이 늘 궁금하다. <<숫자사회>>의 저자는 이 논의에서 더 들어가 "새로운 한국형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핵심가치는 넓은 범위의 구성원 간 신뢰에 기반한 다양성 확장이다"(p.230). 추상적인 문장들만을 쓴 책이 아니다. 더 실용적인 대안들도 제시되어 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간판 취득은 지금보다 쉽게 하되, '유지를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p.248)는 것. 나의 학부시절 독일에서 학위를 따온 분들이 더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입학은 쉬워도 졸업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이런 유럽과 달리 입학이 어렵고 졸업은 돈만 있으면 쉬운 우리나라에게 좋은 해결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교육과정을 싹 바꿔야 하는데 거기서부터 지끈) 이는 대학입학이나 청년기층의 사회진출을 위한 시험들은 물론 회사에서 이른 퇴직이후 제 2의 인생을 계획해야할 때 역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책 추천 대상 : 성공의 정의라는 '시험-아파트-돈'(p.251)이라는 숫자사회에 살면서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은 채 웃으며 스트레스 풀고 삶의 시름을 달래는 것이 최고"(p.261)인 줄 알고 살았던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에게 권하는 책.

* 희한하게 두 장 넘겼나 확인하며 읽었다. 종이의 두께가 다른 책들에 비해 두꺼운가? 싶기도 하다. 뭐니뭐니해도 한 장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다 읽어버리고 싶다는 몰입력있는 책이기도 했다.
#숫자사회#임의진#웨일북#최재천교수추천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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