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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부터 나일까? 언제부터 나일까? - 생명과학과 자아 탐색 ㅣ 발견의 첫걸음 4
이고은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평점 :
빨강, 파랑, 노랑 등등의 도트(아마도 세포, 또는 원자겠지?)로 몸을 구성하고 있는, 날아다니는 아이가 <세포부터 나일까? 언제부터 나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표지. 이 아이의 둥근 머리위에는 “생명과학과 자아 탐색”이라고 써 있다.
차례 - 1부 나는 누구일까? 2부 우리는 누구일까?
사춘기 아이들이 지금 머리터지게 생각하고 있을 ‘자신’에 대한 정체성과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치들을 저자의 전공인 생명과학안에 담았다. 저자역시 외길만을 걷진 않은 것 같다. 물론 생명과학이라는 전공이 이어지긴 했지만 응용생물화학부-석사까지 마치고 다시 생물교육과로 돌아왔다는 약력이 눈길을 끈다. 과학자로의 삶에서 교육자로의 삶으로의 변곡점이 이 책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며... 어렵게 외운 것일수록 나중에 잘 기억되듯이 어렵고 힘들었던 생각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의 인생에 좌표가 된다는 것을, 이 청소년용 과학책을 통해 배운다.
1부를 읽으면서 “2018년 미국 데이비드 글랜즈먼 교수의 연구팀은 바다 달팽이에서 다른 바다 달팽이로 기억력을 옮기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p.39)했다고 하는 부분을 읽고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화한다는 <미키7>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미키는 익스펜더블로서 기억을 복제해놨다가 육체가 사망하면, 똑같은 몸을 재생시켜 거기에 그 기억을 이식한다. 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미키인가?라는 ‘테세우스의 배’가 그 책의 큰 주제이기도 하다. <미키7>을 읽으며 ‘기억을 복제하려면 멀었겠지’ 생각했었는데 과학책을 읽으니 ‘조만간 다가오고 있는 일이었구나’.
2부에서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색의 다양성”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나’ 특히 ‘사피엔스 시점’에서 ‘우리’ 또는 ‘인간이 아닌, 지구에 사는 다양한 생물종’으로의 시점을 짚어주는 부분에서 <리얼리티 버블>이 떠올랐다. 지구를 인간만이 주인인것처럼 사용하고 있는 요즘, 지구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다른 생물종이 존재하고 그들은 인간과는 다르다라는 정보는 생물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생명 존중은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라, 인종별로 나뉘어 있지만 우리는 100% 순수한 한국인의 피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람을 바라볼 때 가진 재산이나 배운 정도, 사회적 위치로 삶의 형태가 나뉘어 있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청소년들은 이런 사회가 굉장히 부조리한 것임을 실컷 느끼고 있을 터. 저자는 우리가 결국 1598년 노량진 해전에서 숨을 거둔 이순신장군과도, 더 거슬러 올라 티라노사우르스와 같은 질소를 호흡하며 같은 탄소를 공유한 존재라는 평등하다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 역시 이 이야기가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곧 청소년이 될 슬이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후대에 남길 수 있는 단 하나의 지식에 대해 “세상의 모든 물질은 원자로 되어 있다”라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왜 저런 대답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몸은 세포로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행동이 내 의지이기도 하지만 내 몸을 공유하는 세포의 의지이기도 하다. 이 지구 역시 그렇다. 내 몸에서의 세포처럼 나 역시 지구를 공유하는 원자처럼, ‘나’를 생각하고 ‘우리’를 향해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협력적 유전자”(p.103)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이 사실을 알고보니 모든 물질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처럼 인간을 겸허하게 해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다.
p.s 라떼는 ‘과학은 무조건 암기’였는데 이 저자분에게 배우는 학생들 너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