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의 새 구두 알맹이 그림책 56
최은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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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는 느린 동물이다. 꿈에 달팽이가 기어다니면 기다리던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다. 그림책 [여름이의 새 구두]는 '기다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이 나만을 위한 선물일 때는 어떨까? 다른 기다림보다 더 설레고, 더 참아내기 힘들지만, 꼭 참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해줄 것이다.

처음 가는 길에서 맞춤 신발을 만드는 '수제화' 가게를 보게된 아이는 '나만의 것'에 대해 오래, 깊게 생각하곤 결심한다. 나만의 구두를 가지겠다고. 나만의 구두를 가지기 위해선 열흘 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아이에게 열흘은 긴 시간이다. 느끼지 못할 때엔 혼자서 달려가는 것만 같던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랄 때엔 달팽이처럼 느리기만하게 느껴진다. 아이는 구두를 기다리며 자신이 이전에 기다렸던 다양한 것들에 대해서 떠올려 보고, 기다림 뒤에 느꼈던 성취에 대해 기억해낸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맞이한 '보라색 예쁜 구두' 는 아이를 펄쩍펄쩍 뛰게 한다.

매일을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기다린다는 것은 때론 곤욕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점점 힘들어지는 것은 기다리는 과정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기다린 후에 오게 될 보상에만 집중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설레임, 기대감, 불안감, 견뎌내기 등 기다림의 과정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배울 수 있다. 감정 표현에 서툰 어른들과 뻔한 감정표현만을 하는 아이들. 우리는 매순간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도 즐기며, 오래 기다린 만큼 더 소중해질 기다림의 끝도 흠뻑 즐기며 살아가야 겠다. 코로나19로 2년 동안 제대로 된 여름 휴가를 즐기지 못했다. 지금부터 내년 여름을 기다리며 멋진 휴가 계획을 아이들과 세워야 겠다. 앞으로 일 년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내년 여름을 기다보아야겠다. 벌써부터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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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8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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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은 1985년 출간된 코맥 매카시의 다섯 번째 장편 소설이다. 작가는 작품을 위해 현지를 답사하고 스페인어를 익히며 사료를 조사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의 작중인물 다수가 사료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소설 속 사건들 역시 실화에 기초한 것이라 한다. 작품을 읽는 내내 건조하고 , 메마르고, 피가 낭자한 잔인함에 아연실색했는데 이 모든 일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이름 없는 한 소년. 파리한 안색에 비쩍 마른 아이는 어머니의 죽음과 맞바꾸고 탄생했다. 아이는 이유없는 폭력이 스멀스멀 자라나다 기다렸다는 듯이 열네 살에 동트기 직전 집을 나선다. 소년은 거침이 없다. 무소의 뿔처럼 두려움 없이 나를 막는 자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세상도 소년을 무지막지하게 대하는 건 마찬가지다.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뺏기게 된 소년은 전쟁이 끝났지만 더 많은 땅을 요구하는 불법군대에 입대하여 멕시코로 향한다.

죽음의 냄새를 맡는 늑대들이 소년의 부대를 뒤따른다. 늑대가 따라붙는 다는 것은 소년의 무리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이 매번 발생한다는 것이다. 주인없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무리에 합류했던 소년은, 이젠 인디언 머리가죽을 벗기게 된다. 고향을 떠나 타인들의 땅을 헤매는 백인들, 스페인어를 하는 멕시코인들, 백인들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인디언들, 아파치든 평범한 인디언이든 멕시코인이든 가리지 않고 머리 가죽을 벗기는 미군 용병들. 피가 낭자하고, 도망가고, 쫓고, 쫓기며, 시체가 여기저기 페이지마다 널부러져 있어 잔인함에 대한 감흥이 무뎌질 정도이다. 다양한 폭력과 자극의 중심에 서있는 이들이 느낄 무력감, 막막함, 광기를 불러오는 폭력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페이지마다 읽어내는 것이 곤혹일만큼 잔인했다.

소년은 어느 순간 이야기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야기는 소년처럼 이름없이 등장하는 기괴한 판사와 잔인한 부대의 대장 글랜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물론 소년도 그들 부대의 일원이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부대는 비정하다. 갓난 아이의 머리를 돌부리로 쳐 죽이고, 악취 나는 머리 가죽을 장식인 양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며, 식량이 떨어지면 말을 죽여 말고기로 연명하고, 뒤처지는 부상자는 가차없이 버려진다. 그들에겐 자비나 동정이 없다. 소년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소년도 부대의 일원이다. 소년은 이 모든 것을 함께 했던 부대의 일원인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소년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누구 못지않게 악해서였을까? 아니면 부대에서 그의 곁을 지켰던 전직 신부 토빈과 그를 부대로 이끌었던 토드빈의 보호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그들은 소년을 보호했을까?

너는 암살자도 게릴라도 아니야. 판사가 외쳤다. 네 마음 한 구석에는 흠집이 나 있어.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너만이 내 뜻을 거역했지. 너만이 네 영혼 한편에 천국에나 어울릴 만한 온화함을 갖고 있었어.

[핏빛 자오선/p.416]

소년은 자라서 '그'로 불려지고, 절대 악으로 보여지는 판사와 대면하게 된다. 소년은 스스로 역경을 이겨냈다고 자부했지만, 판사의 하얗고 거대하고도 끔찍한 살집에 푹 파묻힌다(p.462).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구분지어질 만큼 악하거나 선하지는 않지만 '절대 악'에는 대응했던 소년이 결국은 악에 전멸된다는 것일까? 결코 잠을 자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며 벌거벗은 채 춤을 추는 판사로 마무리 되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아....너무 어렵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뼈와 뼈를 줍는 사람과 뼈를 줍지 않는 사람이 자리한 곳에서 구멍에 불을 붙이고 강철을 빼내어 모두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천국에서나 어울릴 만한 온화함'을 가진 소년이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코맥 매카시의 작품은 처음 접해 보았다. 두근 거리는 기대와는 달리 너무 어렵고, 힘들게 읽어 나갔다. 시적이고 함유적이며, 성서 이야기가 숨겨진 그의 문장들을 이해하며 읽어나가기엔 나의 능력도, 시간도 부족했다는 핑계를 대보고 싶다. 옆에 두고 다시 천천히 문장을 이해하며 읽어보고 싶다. 『핏빛 자오선』을 시작으로 그의 국경 시리즈 3권도 마저 탐독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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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자오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8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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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50-351
손에 특정 패를 쥐고 있는 자는, 따라서 존재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네. 이것이야말로 전쟁의 속성이야. 일단 게임에 판돈이 걸리면 권위와 정당화는 저절로 생겨나네. 보라고, 전쟁은 가장 진실한 형태의 예언이야. 더 큰 의지 안에서 한쪽의 의지와 다른 쪽의 의지를 실험하지. 사실상 그 둘을 함께 묶어 서로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바로 더 큰 의지라네. 전쟁은 궁극적으로  존재의 단일화를 강요한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게임이지. 전쟁은 바로 신이야.

● p. 416
너는 암살자도 게릴라도 아니야. 판사가 외쳤다. 네 마음 한 구석에는 흠집이 나 있어. 내가 모를 줄 알았니? 너만이 내 뜻을 거역했지. 너만이 네 영혼 한편에 천국에나 어울릴 만한 온화함을 갖고 있었어.

● p.437
그는 나직이 말했다. 자신은 미국인이며, 고항에서부터 멀리 떠나왔으며, 가족은 없고, 많은 곳을 여행하고, 많은 것을 보았으며, 전쟁에 참전했고, 역경을 이겨 냈다고.

● p.455
중요한 것은 춤이고, 순서와 역사와 끝이 춤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면 춤을 추는 사람이 그것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지. 어떤 역사든 그것은 각 개인의 역사도 , 각 개인의 역사의 합도 아니라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거늘 자신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어찌 알겠나. 오히려 자신은 여기 없을 수도 있었다고 믿고 있지.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이 있기에 그것은 어림도 없는 생각이네.

● p.464
그는 결코 자지 않는다. 그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빛과 어둠 속에서 춤을 추고 최고의 사랑을 받는다. 판사, 그는 결코 자지 않는다. 그는 춤을 추고, 또 춘다. 그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디언 무리 소탕이 끝나고도, 그들은 서부에 남아서 다양한  악행을 일삼고, 돈벌이를 한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그리고 소년만 남는다.

소년은 자라서 '그'로 불려지고, 판사와 대면하게 된다. 소년은 스스로 역경을 이겨냈다고 자부했지만, 판사의  하얗고 거대하고도 끔찍한 살집에 푹 파묻힌다(p.462).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구분지어질 만큼 악하거나 선하지는 않지만 '절대 악'에는 대응했던 소년이 결국은 악에 전멸된다는 것일까? 결코 잠을 자지도, 죽지도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며 벌거벗은 채 춤을 추는 판사로 마무리 되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아....너무 어렵다.  

뼈와 뼈를 줍는 사람과 뼈를 줍지 않는 사람이 자리한 곳에서 구멍에 불을 붙이고 강철을 빼내어 모두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소년이길 바란다. 판사일까? 아...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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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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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2월16일 토요일

● p.153-154
전사자와 부상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 우회해서 공격할 만도 한데, 독일군은 같은 방식으로 계속 공격하여 불필요한 희생만 키웠다.(...) 벅 중위와 거의 모든 병사가 포로로 잡혔다. 벅 중위의 소대는 불과 한 명의 전사자와 몇 명의 부상자만으로 독일 낙하산변을 400명이나 사살하거나 부상을 입히고 연대 전체의 진격을 꼬박 하루 동안 저지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독일군의 진격을 늦추었다는 것이다.

● p.161
저녁 5시30분, 코놉은 독일 전차가 제106보병사단 지역을 돌파했다는 보고서를 봤다. "그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독일군 병력" 이라고 적혀 있었다. 딱히 별로 할 일도 없었기에, 그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책을 읽었다.

● p.161
독일군의 인공 달빛은 큰 '실책'임이 밝혀졌다. "독일군이 서치라이트를 숲에다 비추려다 우리 머리 위 구름으로 돌리는 바람에 자신들의 그림자가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 기관총 사수들의 사격 표적이 되었다."


 12월16일 오전 5시 30분 독일군의 기습공격이 시작되고  잠을 자고 있던 미군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독일의 기습 공격은 성공했다. 하지만 적군을 거의 마비시킬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으며, 미군은 곧바로 사태를 수습하여 독일군의 공격은 결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없었다. 미군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은 독일군의  동신도 막아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  시킨다. 독일군은 기계적 문제와 연료 문제, 미숙한 작전으로 기습으로 진행해 빠르게 전진해야 할 공격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시간만 허비하게 된다.

한편 독일군의 공세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투 경험이 부족했던 어린 미군들은 극도의 긴장감과 극심한 공포로 패닉상태에 빠진다. 독일군의 방해로 통신망이 마비된 미군은 독일군의 공세 규모와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오합지졸 독일군의 공세는 겨룰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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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180
전직 신부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학식이라는게 별거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한 주님의 뜻인지도 모르지.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이 있다니. 주님의 의중을 무슨 수로 짐작하겠어. 하느님은 평범한 사람에게 비범한 사랑을 나누어 주시고, 주님의 지혜는 하찮은 미물에도 깃들어 있어 말없는 생명체를 통해서도 더없이 심오한 말씀을 하시잖아.

● p.212
하느님께서 인류의 타락을 막으려 하셨다면 벌써 막지 않았을까? (...) 인간은 쇠락이라는 것을 모르지. 인간은 한밤중에도 정오의 한낮이라는 깃발을 올리네.(...) 야만인 부족이 폐허를 보고 경탄하는 일이 미래에는 또 없을 것 같나? 전혀, 있고 말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후손들이 그런 일을 겪겠지.

● p.257
글랜턴은 말에 살짝 박차를 가하며 권총을 뽑아 들었다. 나른했던 푸에블로 마을이 당장 휘청휘청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사람이 교회로 달려가 제단 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 결과 한 명씩 한 명씩 울부짖으며 성단으로 끌려나와 도상달하고 머리 가죽이 벗겨졌다.

 소년은 어느 순간 이야기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야기는 기괴한 판사와 잔인한 글랜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물론 소년이 그들 부대의 일원이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백인들의 인디언 사냥은 문장 문장이 끔찍하다.  표현되는 메마른 사막의 모습은 읽어나가는 나의 감정까지도 메마르게 한다. 인디언들의 머릿 가죽을 벗기는 미국인들과 백인들의 머릿가죽을 벗기는 인디언들, 인디언의 짓으로 위장하여 여행객을 덮치는 백인들, 백인들을 증오하는 멕시코인들. 서부의 숨막히는 상황 속 인물들은 알알이 따로 떨어져 있는 모래알과 같다. 

판사와 글랜턴의 부대는 비정하다.  갓난 아이의 머리를 돌부리로 쳐 죽이고,  악취 나는 머리 가죽을 장식인 양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며, 식량이 떨어지면  다니던 말을 죽여 말고기로 연명하고,  뒤처지는 부상자는 가차없이 버려진다. 그들에겐 자비나 동정이 없다. 소년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소년도 부대의 일원이다. 소년은 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부대의 일원이다. 소년은 아마 바삭바삭 메말라 버렸을 것이다. 아니면 애초에 메말라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을 함께 하니 말이다.

부대의 인디언 무리 소탕으로 보상금 협정은 해제되었지만 , 그들이 도시를 떠나자 글랜턴의 머리에 현상금이 걸린다. 이젠 그들의 도망자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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