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자오선』은 1985년 출간된 코맥 매카시의 다섯 번째 장편 소설이다. 작가는 작품을 위해 현지를 답사하고 스페인어를 익히며 사료를 조사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의 작중인물 다수가 사료에 등장하는 인물이며, 소설 속 사건들 역시 실화에 기초한 것이라 한다. 작품을 읽는 내내 건조하고 , 메마르고, 피가 낭자한 잔인함에 아연실색했는데 이 모든 일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니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은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했다.
이름 없는 한 소년. 파리한 안색에 비쩍 마른 아이는 어머니의 죽음과 맞바꾸고 탄생했다. 아이는 이유없는 폭력이 스멀스멀 자라나다 기다렸다는 듯이 열네 살에 동트기 직전 집을 나선다. 소년은 거침이 없다. 무소의 뿔처럼 두려움 없이 나를 막는 자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세상을 대한다. 세상도 소년을 무지막지하게 대하는 건 마찬가지다.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모두 뺏기게 된 소년은 전쟁이 끝났지만 더 많은 땅을 요구하는 불법군대에 입대하여 멕시코로 향한다.
죽음의 냄새를 맡는 늑대들이 소년의 부대를 뒤따른다. 늑대가 따라붙는 다는 것은 소년의 무리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이 매번 발생한다는 것이다. 주인없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무리에 합류했던 소년은, 이젠 인디언 머리가죽을 벗기게 된다. 고향을 떠나 타인들의 땅을 헤매는 백인들, 스페인어를 하는 멕시코인들, 백인들의 머리가죽을 벗기는 인디언들, 아파치든 평범한 인디언이든 멕시코인이든 가리지 않고 머리 가죽을 벗기는 미군 용병들. 피가 낭자하고, 도망가고, 쫓고, 쫓기며, 시체가 여기저기 페이지마다 널부러져 있어 잔인함에 대한 감흥이 무뎌질 정도이다. 다양한 폭력과 자극의 중심에 서있는 이들이 느낄 무력감, 막막함, 광기를 불러오는 폭력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페이지마다 읽어내는 것이 곤혹일만큼 잔인했다.
소년은 어느 순간 이야기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야기는 소년처럼 이름없이 등장하는 기괴한 판사와 잔인한 부대의 대장 글랜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물론 소년도 그들 부대의 일원이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부대는 비정하다. 갓난 아이의 머리를 돌부리로 쳐 죽이고, 악취 나는 머리 가죽을 장식인 양 주렁주렁 걸치고 다니며, 식량이 떨어지면 말을 죽여 말고기로 연명하고, 뒤처지는 부상자는 가차없이 버려진다. 그들에겐 자비나 동정이 없다. 소년은 언급되지 않았으나 소년도 부대의 일원이다. 소년은 이 모든 것을 함께 했던 부대의 일원인 것이다. 그리고 소년은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소년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누구 못지않게 악해서였을까? 아니면 부대에서 그의 곁을 지켰던 전직 신부 토빈과 그를 부대로 이끌었던 토드빈의 보호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그들은 소년을 보호했을까?